
우리는 보통 ‘물질’을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로 이해한다. 그러나 어떤 물질은 내용이 아니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비어 있는지로 성능이 결정된다. 분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 그 미세한 공간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소재 과학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금속–유기 골격체(MOFs)는 원자와 분자를 벽과 기둥 삼아 ‘공간 자체’를 설계 대상으로 끌어올린 물질이다. 이 글은 분자의 빈 공간을 건축하는 과학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방식으로 실험실을 넘어 산업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따라간다.
건축은 무질서한 재료 더미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그리고 질서가 생기는 순간, 공간은 단순한 빈틈이 아니라 기능을 담는 그릇이 된다. 2025년, 노벨화학상은 이 건축을 분자 수준에서 재현한 세 명의 과학자들을 조명했다. 이들은 마치 건축가와 같이 금속 이온(혹은 금속 클러스터)를 기둥으로, 유기 분자를 연결재로 삼아 규칙적인 골격을 세우고 그 안에 빈 공간을 남겼다. 금속–유기 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s, MOFs)는 그렇게 ‘설계된 빈 공간’을 가진 분자 건축물이다. 분자 하나하나를 블록처럼 취급해 공간 자체를 설계 대상으로 삼는 발상은, 소재 과학을 ‘찾는’ 학문에서 ‘만드는’ 영역으로 이끈 전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MOF는 금속과 리간드가 배위 결합으로 연결돼 형성되는 배위 네트워크로, 구조 안에 잠재적으로 빈 공간(기공)을 포함한다. 그 뿌리는 20세기 중반 확립된 배위화학과 배위 고분자 연구에 있다. 다만 초기에는 공간의 설계보다는 ‘새로운 결정 구조’ 자체가 주목표였다. 특히 초기 배위 고분자들은 기공에 함유된 용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결정 구조가 무너져 내려 빈 공간을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무한히 연결된 이 골격체들은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결정’에 머물렀고,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다공성 소재를 바라보는 인식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 무기 기반(제올라이트)이나 탄소 기반(활성탄) 다공체들은 조성과 구조가 제한적이었고, 따라서 기공의 환경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MOF는 다양한 종류의 금속과 리간드 조합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배위 결합이 제공하는 방향성·가역성(자기조립성) 덕분에 수많은 구조들을 합성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용매를 제거한 뒤에도 기공을 온전히 유지하는 구조들이 다수 발표됐다. 이는 다공성이 더 이상 주어진 구조를 활용하는 개념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끔 설계되는 시스템으로 재정의하는 분기점이 됐다. 설계 가능한 기공이 ‘가능성’에서 ‘재현 가능한 방법론’으로 바뀌자, MOF 연구는 구조 보고를 넘어 성능과 기능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망상화학(reticular chemistry)의 등장은 MOF 연구를 ‘분자 단위의 건축’으로 바꿔 놓았다. 망상화학은 유기·무기 분자들을 ‘분자 빌딩’의 자재로 보고, 미리 설계한 골격을 실제 결정으로 구현하려는 설계 방식이다. 이 개념이 자리 잡으며 연구자들은 ‘분자 빌딩’ 설계와 분류의 언어로 ‘토폴로지(topology)’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토폴로지는 복잡한 MOF 구조를 원자 종류의 차이에서 잠시 떼어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연결성)”만 남긴 그물 구조로 단순화해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화학적으로 다른 재료라도 같은 뼈대를 공유하도록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의미에서 망상화학은 원하는 기공 환경(크기·형태·화학적 성질)을 디자인하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수학적으로 ‘가능한 그물 구조(토폴로지)’에서 출발해 후보 구조를 제안하고, 합성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이러한 설계 문법이 자리 잡은 2000년대 중반 이후 MOF는 매년 수천 종 이상이 보고될 만큼 급격히 성장했다. 설계가 가능해지자 연구자들은 다음 단계로 “무엇이 더 잘 작동하는가”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비교가 가장 빠르게 드러나는 지표는 물질의 흡착·저장 성능이었다. 특히 수소·메탄·이산화탄소 같은 작은 분자들을 대상으로 MOF는 기존 다공성 소재들의 한계를 빠르게 넘어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MOF 연구는 흡착·저장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학문 영역으로 넓어졌다. 연구자들은 MOF 내부의 공간을 ‘단순한 물질 창고’가 아닌 ‘설계 가능한 분자 실험실’로 재해석했다. 기공 내부에서 촉매 반응이 진행되도록 설계하고, 전하(전자·이온) 이동과 반응 경로를 조절하는 등 기공을 ‘분자 규모의 반응 무대’로 활용한 것이다. MOF는 더 이상 ‘다공성’에만 머무르지 않게 됐다. 예를 들어, 원자 단위의 활성점 조절, 반응 경로 제어, 분자 식별과 같은 다기능성 통합을 위해 기공을 정밀하게 설계하는 연구가 확산됐다. 기공을 공간으로만 보던 관점이 바뀌면서, 골격 자체의 물성도 다시 탐구됐다. 음의 열팽창 계수, 격자 진동 특성, 자체 전도도 등의 독특한 물리적 특성들은 연구자들이 기공을 넘어 MOF라는 물질 자체에 다시금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한 확장은 MOF를 단일 목적 소재가 아니라, 기능을 얹고 조합할 수 있는 플랫폼 소재로 자리 잡게 했다. 이는 MOF 연구가 성능 지표 경쟁을 넘어 설계 방법론의 성숙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설계 자유도와 성능 성과가 축적되며 MOF는 센싱, 에너지 생산·저장, 약물 전달, 농업 및 식품 저장 등 수많은 응용 분야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왔다.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성능을 보인다는 점이 알려지자, 산업계 역시 MOF의 실용성에 관심을 보였다. 곧이어 MOF의 대량 합성, 성능 안정성 향상, 비용 평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MOF의 상용화 연구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연구 성숙도가 높은 기체 흡착·분리·저장을 중심으로 Nuada(영국), NuMat Tech.(미국)과 같이 MOF 기반 제품/실증 사례가 등장했다. 특히 글로벌 화학기업인 BASF는 2023년부터 특정 MOF를 연간 수백 톤 규모로 생산하는 체계를 확보했다. 이는 MOF가 실험실의 이상적 결정에서 벗어나, 실제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상용화에 이른 구조는 제한적이며, ‘설계의 자유도’와 ‘공정에서의 재현성’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지금까지 연구된 대다수의 MOF는 완벽히 예측가능한 모양을 갖는, ‘결정’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의 결함과 불균일성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성능을 좌우하는 전제 조건으로 부상했다. 이에 연구자들은 ‘완벽한 결정’이라는 전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복장성과 무작위성을 관리 가능한 설계 변수로 바꾸고, 결함·혼합을 의도적으로 제어해 실사용에서도 재현 가능한 성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새로운 변수들을 다루는 접근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다성분(multivariate) MOF이다. 이는 서로 다른 빌딩 블록을 한 골격 안에 섞어 넣는 방법으로, 같은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기공의 화학 환경을 미세 조정할 수 있다. 즉, 단일 성분에서는 얻기 어려운 특성과 성능을 복잡성의 조절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접근법이다. 다른 축은 비결정성 MOF(비정질·액체·유리) 연구다. 이들은 결정 격자의 규칙성이 없지만, 성형·가공 공정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계열은 작동 환경에서의 구조 변화 자체를 성능 설계의 일부로써 조절하여 무작위성을 이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현장에선 필연적인 비규칙성을 조절하여 산업 공정에서의 성능을 설계 변수로 취급하려는 연구 방향이다. 이제 질문은 “결정 구조를 얼마나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가?”를 넘어, “복잡한 구조와 공정 조건을 어떻게 제어해 원하는 기능으로 연결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MOF는 데이터 과학과 자동화 기술이 가장 빠르게 융합되고 있는 소재 분야 중 하나다. MOF는 조성(금속·리간드·결함)과 합성 조건의 조합이 방대해, 전통적인 시행착오만으로는 탐색 효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구조를 비교적 일관된 규칙으로 기술할 수 있어 표준화된 데이터 생성에 유리하다. 이런 특성은 후보군을 빠르게 선별하는 고속 스크리닝 전략과, 실험 그 자체를 자동화한 자율형 소재 탐색(Self-Driving Lab)으로 이어진다. 이들 자율 실험실은 ‘설계–합성–측정–학습’의 반복으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이 다음 실험 조건을 제안하면 로봇이 합성과 공정 조건을 실행하고, 측정 데이터가 곧바로 학습 단계로 되돌아가 다음 후보를 갱신한다. 이런 루프는 동일한 장비와 프로토콜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성을 가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이 표준 데이터가 쌓일수록 합성 조건–구조–성능의 상관관계는 전통적 방식보다 더 명확해진다. 특히 실패 실험까지 함께 기록되면 모델의 편향이 줄고, 재현성에 대한 산업적 요구를 예측 단계로 끌어올 수 있다. 결국 자율 실험실은 더 많은 MOF를 찾는 도구를 넘어, 공정 조건을 포함한 최적화를 통해 ‘쓸 수 있는 MOF’를 빠르게 선별하는 인프라로 기능한다. 이렇게 ‘재현성까지 포함한 설계’가 가능해지면서, MOF는 지속가능성처럼 조건이 변동하는 현실 문제로 직접 연결되기 시작했다.
MOF 연구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어떻게 쓸 수 있는가”로 점차 중심을 옮겨왔다. 이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무대가 지속가능성이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분리–저장–전환의 전 과정에서 에너지 비용과 단계 수를 줄이는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실제 환경은 희박한 농도, 복잡한 혼합물, 변동하는 조건으로 구성돼 있어, 특정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해법으로는 현장 성능을 담보하기 어렵다. MOF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현실 조건을 공정 설계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공의 크기와 표면 화학을 조절해 혼합물에서 특정 분자만 선별하는 ‘선택의 문턱’을 만들 수 있으며, 그 문턱은 오염·수자원·에너지라는 서로 다른 문제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즉, 같은 설계 원리가 “무엇을 남길지(선택)”, “어떤 조건에서 반복할지(운전)”라는 형태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MOF를 이용한 세 가지 예시를 간단히 들고자 한다. 먼저 난분해 오염물질 제거에서는 과불화물질이나 용존 의약품처럼 농도는 낮지만 위해도가 큰 분자를 선택적으로 포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물 부족 분야에서는 건조 환경의 대기에서 수분을 흡착·방출하는 운전 사이클을 설계해, 물을 공기에서 모으는 공정 개념을 제시했다. 에너지 전환에서는 CO₂ 포집을 전환 반응과 연계해 공정을 구성하고, 포집–재생–전환 조건을 함께 설계하려는 접근을 제안했다. 이 예시들은 공통적으로 주목적에 맞게 MOF의 ‘문턱’을 미세조정하여 원하는 기능을 도입할 수 있었다. 결국 MOF의 핵심은 응용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고, 복잡한 현실 조건에서 ‘선택과 운전’을 물질 수준에서 정의해 공정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MOF의 역사는 소재 과학의 초점이 발견에서 설계와 최적화로 이동해 온 과정을 압축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골격을 더 많이 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구조–물성–기능의 연결을 공정 조건과 함께 다루는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다. 합성의 재현성과 작동 환경의 변동성이 설계 변수로 들어오면서, MOF는 실험실 성능을 넘어 현장 성능을 논의하는 언어를 갖추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제약 아래에서 어떤 기능을 일관되게 구현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곧 MOF를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다음 단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