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히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저 ‘일상’이고 ‘현상’인데 유난히 반짝거려 몸을 낮추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때가 있다. 그 간과되기 쉬운 반짝임은 때로 누군가의 인식과 사유를 거쳐, 설명가능한 세계로 옮겨진다. ‘재료무기화학자’는 그 전환의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구조와 성질을 끝까지 추적해 언어로 건져 올리고, 그 말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작동 방식을 다시 쓰는 이. 바로 오현철 교수와, 그가 마주한 세계 첨단소재연구관 건물 4층에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트리플 모니터와 한쪽 벽에 세워진 클래식 기타. 오현철 교수의 연구실에는 단순한 실험 도구를 넘어, 그가 지나온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학보사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장을 다듬던 경험, 그리고 클래식 기타를 반복 연습하며 미세한 차이를 끝까지 붙잡던 시간. 그 경험과 시간 모두가 연구 주제를 읽고 연구팀을 이끌며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을 오현철 교수는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오 교수가 대학 시절의 낭만을 전공 공부가 아닌 학과 밖의 경험에서 먼저 찾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곁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준비 과정에 가깝다. 사람과 현상을 읽는 감수성,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지금의 연구와 리더십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됐을 터. 실제로 각자의 장비 앞에서 실험에 몰두해 있던 연구실의 분위기는, 그가 들어서자 금세 웃고 이야기하는 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 바로 이것이 성과에 앞서 팀원들의 컨디션과 관계를 먼저 살피며, 연구팀의 호흡을 조율해 가는 오 교수의 연구 방식인 셈이다.
“기자 활동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잖아요.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제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의 맥락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경험이 공동 연구자나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클래식 기타는 나직한 톤의 악기라 굉장히 정밀합니다. 각도·터치·템포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져서, 제대로 된 음을 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그 지점이 연구와 많이 닮았어요.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를 크게 바꾼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위해 꾸준해야 한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오 교수의 연구가 수소라는 보이지 않는 기체를 향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학부 시절부터 길러진 섬세한 관찰력과 집요함은 극저온에서도 작동하는 정밀한 실험 설계와 구조 조정으로 이어졌고,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든다는 믿음은 그의 연구 전반을 관통하는 태도로 자리 잡았다.

오 교수의 연구 여정은 어느 한 분야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학부 시절에는 계산화학(DFT)을 통해 물질의 구조와 반응을 탐구했고, 석사 과정에서는 태양전지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 이르러 처음 수소를 접하면서, 보이지 않는 기체 하나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술적 난제에 자연스레 이끌리게 됐다고 한다.
오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수소는 작고 가벼우며 확산 속도가 빠르다. 그만큼 다루기가 까다롭고, 저장과 운송을 위해서는 고압이나 극저온이라는 극단적인 조건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안전 문제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이 바로 오 교수에게는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현상’이자, 그 사유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됐다.
“지나치게 높은 압력이나 극저온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운송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어요. 당시 수소 저장과 운송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수백 기압의 고압 수소로 압축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영하 250도 안팎의 극저온에서 액화수소로 만드는 방식이었죠.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지만, 높은 에너지 비용과 안전 부담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오 교수는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 영역’에 집중하게 된다. 온도는 끌어올리면서도 수소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 고압도 아니고, 20K(약 –253.15°C) 수준의 극저온도 아닌 조건에서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면 훨씬 현실적인 기술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오 교수의 연구실에서 완성된 기술이 향하는 곳은 핵융합 연료 정제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에 그는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분리, 반도체 소자의 내구성 향상, OLED 발광 효율 개선 등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조건을 염두에 두고, 동위원소 분리 기술을 ‘저온 실험’에서 ‘현실적인 공정’으로 옮기는 연결 고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연구 전환은 동위원소 분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수소를 어떤 조건에서 저장하고 이동시킬 것인가라는 보다 넓은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오 교수는 이 지점에서 수소 저장·운송과 동위원소 분리라는 두 축의 연구가 사회적 요구와 직접 맞닿아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특히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장거리 수소 운송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문제는 더 이상 학문적 관심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연구실에서 축적된 결과들이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을 둘러싼 논의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점에서 성과의 의미는 실험실을 넘어 이미 사회적 대안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액화수소 운송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보일오프 손실(boil-off loss)1) 이거든요. 단열을 아무리 강화해도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수소 액체가 기화해 빠져나가는 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워요. 호주 등지에서 수소를 들여오는 20~30일 동안의 많게는 70~80%까지 손실될 수 있죠. 그래서 다공성 물질을 이용해 수소를 고체 표면에 흡착시키고 기화 속도를 늦추는 방식을 연구 중입니다. 상온에서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고요.”
실제로 최근 발표되는 MOF 관련 논문들에서는 최대 흡착량이나 표면적보다, 상온·상압 환경에서의 작동 안정성, 반복 사용에 따른 구 조 유지 여부, 수분 존재 하에서의 성능 변화 등이 주요 평가 지표로 등장하고 있다. 연구의 관심이 “얼마나 많이 흡착하는가”에서 “어떤 조건에서 실제로 작동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플랫폼으로서의 물질 설계’라는 연구 방향은 더욱 분명해진다. 오 교수는 MOF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공간의 성질에 주목하며, 수소 저장과 동위원소 분리 성능이 온도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차분히 추적해 왔다.
“MOF는 구조나 기능기, 형태까지 모두 설계할 수 있는 물질이에요. 그래서 수소를 단순히 담아 두는 ‘그릇’이 아니라, 수소 분자가 어떤 에너지 환경에서 얼마나 강하게 흡착될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포텐셜 필드(Potential field)’를 만들어 줄 수 있죠. 이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수소가 잘 붙잡히는 온도 범위도 함께 바꿀 수 있습니다. 결국 구조 제어는 저장 용량뿐 아니라, ‘어떤 온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니까요. MOF에서 수소 저 장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는 것은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에요.”
오 교수는 동위원소 분리의 핵심 원리를 ‘양자체 효과(quantum sieving effect)’2) 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고전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다공성 물질 안에서는 가벼운 기체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무거운 기체는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수소가 압도적으로 많은 환경에서 중수소나 삼중수소처럼 무거운 동위원소만을 골라내는 일이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인 이유다.
그러나 오 교수는 이러한 한계를 단순한 물성의 문제가 아닌, 물질 내부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다시 바라보고자 했다.
“수소 분자가 느끼는 인력의 세기와 형태를 정교하게 조절하면 무거운 동위원소가 먼저 통과하고, 오히려 가벼운 동위원소가 오래 머무르는 역전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양자체 효과인데, 기존 방식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선택적 분리를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원리예요.”
이와 함께 오 교수는 연구 방법론 자체에 있어서도 변화를 시도했다. 압력 변화에 따른 흡착 곡선에서 S자 형태가 확인될 경우 기존에는 ‘게이트 오프닝 현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분석을 멈췄다면, 그는 온도 제어, 실시간 구조 관측, 그리고 분자 이동 경로 분석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적용한 것이다. 더 나아가 중성자 산란 분석을 결합해, 구조 변화 위에서 수소와 중수소가 어떤 경로와 방식으로 확산되는지를 추적했던 것.
이러한 접근은 MOF 연구를 ‘그래프 해석에 기반한 추론’의 단계에서 ‘구조와 동역학을 동시에 검증하는 연구’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남겼다. 다시 말해, 무엇이 일어났을지를 짐작하는 연구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증명하는 연구로의 이동인 셈이다.
실험실에서 축적된 이 탐색의 결과는 현재 영하 153℃ 수준까지 작동 조건을 끌어내렸다. 이는 단일한 성능 수치를 제시했다는 의미를 넘어, 동위원소 분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자체를 설계 대상으로 삼는 연구가 한 단계 진전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극저온 환경에서도 양자체 효과가 구현될 수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분리 효율을 제한하던 기존의 물리적 제약을 다시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연구는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반복의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그 속에는 정설이 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가설이 무수하다는 것. 하지만 오 교수는 이조차 즐거운 과정 중 하나로 여긴다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데이터가 등장하는 순간이야말로, 연구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 같아서다.
“물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실수인지, 새로운 현상의 신호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돼요.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그대로 사라지는 순간도 있는데, 그럴 때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때로는 하루 종일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죠. 그러다 보면 처음엔 우연처럼 보였던 데이터가 오히려 더 단단한 논문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진 연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한번 숨을 고르고 다시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 모든 시행착오와 우회, 멈춤과 재출발을 거쳐 오 교수의 시선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 닿는다. 상온·상압 조건에서 충분한 저장 용량과 충·방출 속도, 안전성과 경제성을 함께 갖춘 기준, 그가 ‘미국 DOE 타깃’이라 부르는 목표다. 금속 수소화물은 100년 가까이, MOF 연구 역시 수십 년간 이어져 왔지만 아직 누구도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오 교수에게도 이 목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면서도, 끝내 넘어야 할 연구의 경계선에 서 있음을 뜻한다.
실험실의 성과를 실제 산업 시스템으로 곧바로 옮길 수 있는 기술로 끌어올리겠다는 그의 말 역시, 결국 이 지점을 향하고 있다.
’DOE 타깃’은 수소 저장 연구자라면 누구나 의식하는 일종의 기준점이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제시한 이 목표는 단순히 수소를 많이 저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상온·상압에 가까운 조건에서, 충분한 저장 용량과 빠른 충·방출 속도, 안전성, 경제성까지 동시에 만족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실험실에서 가능한 수치가 아니라, 실제 차량과 산업 시스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금속 수소화물은 수십 년, MOF 역시 20~30년 넘게 도전해 왔지만 아직 누구도 이 기준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이 타깃은 ‘당장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기보다는, 연구의 방향을 끝까지 붙잡아 두는 최종 좌표에 가깝다. 오 교수에게 상온 수소 저장이 궁극적 목표라는 말은, 바로 이 DOE 타깃을 현실로 끌어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