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ST의 학생증은 개교 이후 몇 차례 변화를 거쳐 왔다. 2009년 개교 당시 첫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학교가 ‘울산과학기술대학교’에서 ‘울산과학기술원’으로 전환되던 시기에 맞춰 새로운 로고와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됐다. 남색과 민트색, 흰색을 기본으로 한 학생증은 당시 변화의 상징이었고, 교직원증과 학생증을 색상으로 구분하는 체계도 이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디자인은 점차 현재의 감각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가로형 카드에 민트색을 중심으로 한 구성은 호불호가 갈렸고, 학생 사진과 정보가 카드 전면에 배치된 방식 역시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아쉽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촌스럽다”, “심리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반응은 수년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복됐다. 이 변화의 흐름을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번 학생증 디자인 개선을 이끈 안순형 위원장이다. 2014학번으로 입학해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UNIST에서 보낸 그는, 스스로를 “학교의 맥락을 꽤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학생들의 불만이 쌓여 있다는 것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사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 5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가 나왔어요. 당시에는 코로나도 있었고, 디자인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있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어느덧 10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때가 왔다’고 느낀 겁니다.”
학생증 교체는 단순한 디자인 변경 이상의 일이었다. 금융사, 학교 본부, 행정 부서가 함께 움직여야 했고, 무엇보다 ‘왜’ 바꿔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했다. 안 위원장은 이 일을 총학생회의 독단으로 추진하지 않기 위해 대학원 총학생회, 경남은행, 학교 본부 재무팀·대외협력팀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 디자인은 공모전으로 시작했다. 50명이 넘는 구성원이 지원했고, 1차 심사를 거쳐 7개 작품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후 구성원 선호도 조사와 전문가 심사를 각각 50%씩 반영해 최종 디자인을 선정했다. 당선작은 다시 카드사와 은행을 거쳐 실제 학생증으로 구현됐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논리는 명확했다. “학생들이 원한다”는 것. 에브리타임 등 커뮤니티에 쌓인 불만의 흔적, 학생들의 반응, 그리고 디자인 개선이 학생증 활용도를 높여 금융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디자인 공모전 예산을 지원했고, 학교 역시 협조했다.
학생증의 변화는 겉모습에만 머물지 않았다. 기능 역시 크게 개선됐다. 기존 학생증은 해외 결제가 불가능했고, 선불 교통카드만 지원돼 별도의 충전이 필요했던 반면, 새 학생증에는 마스터카드 기반 해외 결제 기능과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추가됐다. 물론, 선택에 따라 기존 방식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디자인에도 트렌드를 반영했다. 학생 사진과 개인정보는 카드 뒷면으로 옮겨 프라이버시를 강화했고, 전면은 학교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에 집중했다. 학생증이, 더 이상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신분증’이 아니라, 실제로 쓰고 싶은 카드에 가까워진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목소리를 낼 힘이 되어준 학생회라는 통로, 공모전에 참여하고 의견을 보낸 학생들, 그리고 그 사이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임을 안 위원장은 알고 있었다.
“제가 학생 ‘개인’으로 이야기했다면 잘 안됐을 수도 있어요. 학생회장이라는 자리가 있었고, 그 자리를 가능하게 만든 건 학생들이죠. 관심을 보내주고, 지지해 주고, 참여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 경험은 단순한 성취를 넘어선다. ‘이게 되네’라는 감각, 공동체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은 이후의 삶에도 남을 자산이 됐다.
안 위원장에게 이번 학생증 디자인 개선은 더 나은 학교, 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기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라고 한다. 가령 연구 환경 실태조사가 학교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이라면, 학생증 교체는 일상의 결을 다듬는 작업에 가깝다. 형식과 규모는 달라도, 두 시도가 향하는 방향은 같다.
“제가 그리고 있는 학교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서로를 알고,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였으면 합니다. 학생증은 그런 방향이 가장 일상적인 형태로 드러난 결과라고 생각해요. 매일 손에 쥐는 작은 카드 하나에도, 학교가 지향하는 분위기와 정체성이 담길 수 있다고 믿거든요.”
안 위원장의 말처럼, 이번 학생증의 변화는 단일한 성과라기보다 그가 그려 온 학교의 방향이 하나의 형태를 얻은 순간에 가깝다. 디자인을 바꾸는 데 걸린 시간에는 학교를 오래 바라봐 온 시선과, 구성원들과 신뢰를 쌓아 온 과정이 함께 담겨 있다. 그렇게 완성된 학생증은 지금, 학생들의 지갑 속에서 조용히 학교의 얼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