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엠코어텍은 ‘능동형 EMI(전자파 간섭) 필터 IC’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기업입니다. EMI는 전자기기가 내뿜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소음 같은 것으로, 이 때문에 기기가 오작동하거나 고장나기도 하죠. 모든 전자기기는 출하 전에 이 전자파 규제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해요. 하지만 기존의 수동형 필터는 마치 소음을 막기 위해 벽을 세우는 것처럼 크고, 무겁고, 발열이 심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차단(Blocking)’이 아니라 ‘상쇄(Canceling)’라는 새로운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처럼, 노이즈를 감지하고 그 파형과 정반대되는 신호를 주입해 소음을 아예 지워버리는 방법이 있었죠. 그 결과, 필터의 무게·크기·발열을 동시에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시장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창업이 처음부터 계획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바로 1년 전인 2017년만 해도 제가 회사를 만들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다만 전자파 분야 연구를 하다 보니, 다른 기술은 놀라울 만큼 발전하는데 EMI 필터만큼은 철가방 부품 그대로인 현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전력 컨버터가 예전 철가방 크기에서 지금은 손바닥만 해졌는데, 전력전자파 필터만 그대로였던 거예요. 이 기술 격차에서 “이건 바뀔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기술”이라는 확신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이 아이템은 반드시 시장에 필요한 기술이라 판단했고, 그 판단이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죠.
맞아요. 지금은 교원 창업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2018년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교수 창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휴직을 해야 한다든가 등의 행정적 제약이 있기 마련이었죠. 그런데 UNIST는 선도적으로 교원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휴직 없이 창업이 가능했고, 울산 지역 지원사업을 통해 법인을 설립하면 연구비를 받을 수도 있었고요.
저는 연구 과정에서 얻은 특허를 기반으로 법인을 설립한 경우로, 처음엔 “과제 하나 더 수주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네요. 연구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어느새 이렇게 거대한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사명감으로 자리 잡았고요. UNIST가 교원 창업을 선도적으로 장려하며 행정적 제약을 최소화하며 결정적인 발판이 되어 주었기에, 덕분에 저도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렸듯 사업가로서의 꿈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기술은 다 발전하는데 EMI 필터만 수십 년째 그대로인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덩어리 형태의 광물 그대로를 쓰는 원시시대 방식의 느낌이었죠. 변화를 바란다면 누군가는 끝까지 책임지고 밀어붙여야 하잖아요. 그리고 이 분야를 깊이 파고든 제가 그 누군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아이템이 확실해 ‘언젠가, 누군가’ 하겠지만, 또 그렇다면 ‘지금, 내가’라는 마음이었던 거예요. 그 마음에 책임감과 사명감이 덧입혀져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으니 반드시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능 구현은 오히려 빨리 됐습니다. 문제는 신뢰성이었죠. EMI 필터는 전력선에 직접 연결되기에 번개나 스파크 같은 극단적인 외란에도 절대 망가지면 안 되는 ‘생명줄’과 같아요. 그렇다 보니 아무리 작고 성능이 좋아도, 산업체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신뢰성 문제’를 이유로 채택을 주저하는 게 당연했고요. 저는 이 신뢰성의 장벽을 넘기 위해 ‘절연 구조’를 발명했습니다.
덕분에 파손 우려를 최소화하고, 회로를 극히 안정적이고 저렴한 저전압 소자로 설계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상용화의 문이 열린 거예요. 이것이 저희 기술이 단순한 연구를 넘어 산업 표준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언론이나 업계에서 종종 ‘차폐’라고 표현되지만, 사실 저희가 하는 건 ‘필터링’이 맞아요.
네, 의미상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자파 차폐(Shielding)’는 공기 중으로 퍼지는 전자파를 막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필터링(Filtering)’은 케이블을 타고 흐르는 불필요한 전자파 신호를 차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 기술은 단순히 막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성분만 제거하고 원하는 신호는 그대로 살려내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동형은 노이즈를 막기만 합니다. 그래서 필터가 커질 수밖에 없고, 고전력이 될수록 더 무겁고 뜨거워지는 구조죠. 반면, 능동형은 노이즈를 감지하고 반대 신호를 주입해 상쇄하는 원리예요. 덕분에 능동형 EMI 필터는 훨씬 작고, 가볍고, 발열이 적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실제로 전기차 충전기와 태양광 인버터 실험에서 무게와 부피는 30~40% 수준으로 줄었고, 발열은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제 손으로 바꾸는 것.
제가 이뤄내든, 후대에 이어지든,
이 능동형 필터 기술은 반드시 세상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전기차가 목표입니다. 전기차에 들어간다는 것은 신뢰성의 최고 정점을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무게와 공간 제약이 극도로 심하고, 무엇보다 생명과 직결되기에 가장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되는 게 바로 전기차 분야죠. 저희는 이 궁극의 목표를 위해 창업 이후 지금까지 전기차 관련 과제를 계속 수주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엔 가전제품을 통한 시장 진입이 필수적일 겁니다. 이미 국내 대기업과 협력해 차세대 에어컨 양산 공급을 앞두고 있고요. 다만 가전의 경우 가격 경쟁이 치열해서, 대량 양산으로 단가를 낮춰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과제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성향은 한마디로 ‘마이웨이’였습니다. 정해진 틀을 따라가는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가는 과목은 열정적으로 공부했지만, 흥미가 없는 분야는 상대적으로 무심했죠. 대신 혼자 탐구하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어요. 전공을 선택할 즈음에는 물리학에 발을 들여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제 눈에는 전기전자공학이 가진 응용 가능성과 확장성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듯싶네요. 이론적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세상을 바꾸는 기술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에 전자공학의 특별함이 있었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지금까지의 제 연구와 길을 만들어 온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역할 분리가 필요했어요. 저는 연구개발과 선행 기술에 집중하고, 행정·투자·마케팅 등은 전문 인력들이 맡고 있죠. 덕분에 연구와 학생 지도에 큰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연구가 산업과 멀어지지 않고 단기간에 경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쓰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많은 동기부여도 되고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본인이 ‘사업 퍼스트’인지, 아니면 ‘기술 퍼스트’인지부터 분명하게 구분해야 해요. 저는 분명 기술 퍼스트였어요. 연구를 깊이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창업으로까지 이어진 경우죠. 특히 딥테크(Deep Tech) 분야에서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처음부터 사업 아이디어나 시장성만 쫓기보다 자신이 가진 연구를 얼마나 깊게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차별성, 수년간 쌓인 데이터와 노하우,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가능성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지 싶어요. 결국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투자이자 자산은 ‘연구 그 자체’일 겁니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주제를 파고드는 중에 비로소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창업으로 확장해 갈 수 있어요. 후배 연구자들도 스스로의 위치와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자신만의 깊이를 끝까지 밀어붙이길 바랍니다.
저의 계획은 늘 하던 대로, 멈추지 않고 연구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저희 이엠코어텍과 같은 딥테크 기반 스타트업에게 기술의 우위는 생존과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핵심 기술의 탁월함과 차별성에 저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EMI의 다음 문제에 끊임없이 골몰할 수밖에 없어요. 앞서 말했듯, 저의 마지막 꿈이자 목표는 모든 전기차에 저희 이엠코어텍의 회로가 들어가는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제 손으로 바꾸는 것. 제가 이뤄내든, 후대에 이어지든, 이 능동형 필터 기술은 반드시 세상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가슴 뛰는 도전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