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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새로운 꿈



사하 거르브 (인공지능대학원 졸업)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풍경이 한층 더 아름다워지고, 마음이 달뜰 때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인터뷰 내내 미소로 얼굴을 밝힌 사하 거르브(Gaurav Saha)는 그 단어가 떠오르는 인물 같았다. 신림의 ‘스물일곱 청년’과, 잠실의 ‘AI 제품 책임자’ 사이를 오가며, 코어 타임(Core time) 속에서 자유롭고 순수한 꿈을 꾸듯 맑은 그를 지난 9월 만났다.

  • Words. 편집실   Photographs. 홍승진
세계가 주목한 UNIST

2007년 설립된 UNIST는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세계적 과학기술 선도대학’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2021년, 그 목표는 현실이 됐다. 신흥대학평가 세계 10위,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가 발표한 라이덴랭킹에서 국내 1위를 기록하며, UNIST는 개교 10여 년 만에 세계 유수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교수 1인당 피인용지수 국내 1위는 그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성과는 인도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던 한 청년의 마음에도 깊이 내려앉았다. 그가 바로 사하 거르브(Gaurav Saha)다. 잠들어 있던 꿈이 깨어나자, 그는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경험을 찾는 걸 좋아해요. 낯선 환경이 두렵지 않고, 감성이 풍부해 새로운 환경과 경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흥미를 느끼는 편이죠.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그래서 생겼을 거예요. 계획적으로 준비한 건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걸음씩 움직인 결과가 지금의 UNIST예요.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본 듯해도,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는 기대는 늘 생동했습니다.”

호기심이 열어준 가능성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즐긴 사하는, 영어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낯선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의미를 찾아 이해하고 넘어갔다. 이는 책의 내용을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해 보는 과정이었고,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공부법으로 이어졌다. 그는 특히 숫자와 생명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수학 문제를 풀며 논리적 사고의 즐거움을 느꼈고, 소아과나 생명화학 분야를 탐구하며 생명과학의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곤 했다.
그가 자란 인도의 교육 환경에서 의사, 개발자, 엔지니어는 부모 세대에게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사하는 자신의 성향을 곱씹으며 선택지를 좁혔다.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피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반면 개발자나 엔지니어라면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해외에서도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죠.”
결국 그는 사회적 인정이나 경제적 안정성보다는 관심과 적성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인도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새로운 환경, 배움의 즐거움

“아버님이 인도에서 공군으로 일하셔서, 우리 가족은 3년마다 이사를 다녔어요. 여러 지역에서 살아보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배움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됐죠. 친구가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한다길래, 저도 흥미 삼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과학도 흥미로웠지만, 직접 다루는 부분이 조금 무서웠거든요.”
어린 시절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본 경험은 한국으로 향한 학업 여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 4년간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한국 대학들의 연구 중심 학업 방식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UNIST에서는 연구실에서 직접 실험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깊이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결국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UNIST에서의 학문적 도전

한국행을 결정한 사하는 UNIST 인공지능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 앉아 데이터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을 설계하며, 학문적 호기심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경험은 단순한 공부를 넘어 자신의 꿈을 든든히 뒷받침해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UNIST에서의 수업, 프로젝트, 연구실 경험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있어 큰 힘이 됩니다. 덕분에 제 목표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에요.”
사하는 연구실 안팎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동료들과 활발히 논의하며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겼다. 인도에서 느꼈던 호기심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이 한국에서의 학업과 연구 경험을 통해 구체적인 성취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UNIST는 그에게 단순한 학업 공간을 넘어, 자신의 잠재력을 깨우고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자 선물이 됐다. 이제 그는 인도에서 한국, 그리고 세계로 나아갈 여정 가운데 UNIST에서의 경험이 크나큰 의미일 것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