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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는 것을 보다
X선에서 중성자까지

  • Words. 정준우 교수(물리학과)

컴컴한 침대 밑으로 동전이 굴러 들어갔다. 어디에 있는지 도통 보이질 않는다. 손전등으로 빛을 비춰주고 나서야 손을 뻗어 동전을 찾을 수 있었다. 물체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이상, 어떤 물체를 보기 위해서는 조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명이 있더라도 불빛이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흡수되거나 굴절되어 보고자 하는 물체에 닿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물체를 볼 수 없다. 흙탕물 속에 동전을 떨어뜨리면, 손전등이 별 도움이 안 되는 이유다.

동전 한 개쯤은 포기할 수 있지만, 만약 우리 몸속의 문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몸을 열어보자고는 하지 마시라. 사실 우리 몸은 빛에 어느 정도 투명하기 때문에 지금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서 손전등 불빛을 손가락 끝에 비춰보면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빛은 투과 깊이가 매우 얕아서 몸속 깊은 곳의 문제를 찾기엔 역부족이다.

1895년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은 인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고,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뢴트겐’ 또는 ‘X선’을 검색해 보면, 반지를 낀 뢴트겐 아내의 손뼈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근육과 뼈의 X선 투과도 차이가 대비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 X선이 덜 투과하는 뼈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는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처음으로 촬영한 사진이었다. X선은 발견된지 몇 년 만에 몸속 유리 조각이나 탄환을 찾아내는 데 활용되어 눈부신 의학 발전을 이뤄냈고, 뢴트겐은 그 공로로 1901년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저금통을 가르듯 문화재를 파손하여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두꺼운 금속 때문에 X선 사진을 찍어봐도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럴 때 금속을 뚫고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중성자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

손전등의 불빛이든 X선이든 결국 모두 ‘빛’이다. 모두 전자기파지만, 파장이 다르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투과도가 다르다. 전자기파란 전기장이 진동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파동으로, 물질을 만나면 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를 감싸고 있는 전자를 자극한다.

전자는 음전하를 띠므로, 진동하는 전기장에 반응해 진동하며, 이 반응의 차이에 따라 전자기파의 투과 정도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같은 X선이라도 전자의 수가 적은 가벼운 원자들이 듬성듬성 분포한 기체를 지날 때와, 원자번호가 큰, 전자가 많은 금속 원자들이 빽빽하게 모인 고체를 지날 때의 투과도는 차이가 난다. 웬만한 것의 내부를 다 보여줄 것 같았던 X선도, 뢴트겐 부인이 끼고 있던 두꺼운 금속 반지는 통과하지 못했다.

X선을 가로막는 것이 어디 반지뿐이겠는가. 예를 들어 박물관에 보관된 금동 불상 속에 또 다른 문화재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면, 이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저금통을 가르듯 문화재를 파손하여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두꺼운 금속 때문에 X선 사진을 찍어봐도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럴 때 금속을 뚫고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중성자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인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하가 없어서, 전자기파와 달리 금속의 두꺼운 전자구름에 거의 방해받지 않는다. 대신 중성자는 원자핵과 주로 상호작용한다. 그 결과 금속은 대체로 잘 투과하지만, 오히려 수소와 붕소 같은 가벼운 원자들에 의해 가로막힌다. 즉, 금속은 잘 통과하지만, 종이나 플라스틱처럼 수소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은 잘 뚫지 못하는 셈이다.

이렇게 X선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활용하면, 불상 내부에 숨겨진 유기물질―예를 들어 고문서―을 손상 없이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중성자는 비파괴 검사 도구로서 문화재 연구뿐 아니라 항공, 군수, 연료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원자핵을 보는 중성자는 또 다른 독보적인 특성이 있다. 바로 동위원소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위원소란 전자 개수는 같지만, 원자핵 속의 중성자 수가 다른 ‘친척’ 같은 원소로, 자연에 존재하지만 핵반응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로, 수소보다 중성자가 하나 더 많아 조금 더 무겁다. 흥미롭게도, 중성자는 수소와는 강하게 상호작용해 잘 투과하지 못하지만, 중수소는 쉽게 투과한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물을 만들듯, 중수소 두 개가 산소와 결합하면 ‘무거운 물’, 즉 중수가 된다. 중수는 밀도가 약간 더 높을 뿐, 우리가 마시는 ‘가벼운 물’인 경수와 아주 비슷하다. 전자를 보는 전자기파는 전자 개수가 같은 두 물질의 차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성자에게 중수는 거의 투명한 물이고, 경수는 투과하기 어려운 물이다.

이처럼 물리화학적으로 매우 유사하지만 투과도가 다른 두 종류의 물을 활용하면 실험에서 유용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성자 실험에서 물을 보고 싶지 않다면 경수 대신 중수를 사용해 물 외의 다른 물질을 도드라지게 만들 수 있다. 마치 사진에서 배경을 없애고 피사체만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경수와 중수를 적절히 섞어서 투과도를 조절한다면, 특정 피사체를 보이지 않게도 할 수 있다. 피사체의 색과 배경색을 같게 만들어 ‘위장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러면 다른 피사체가 도드라져 보인다. 동위원소를 구별하는 중성자의 능력은 이렇게 물질 간 대비를 조절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중성자만의 대체 불가한 장점이다.

물론 중성자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X선은 기술 발전 덕분에 치과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중성자는 아직 특별한 시설에서만 활용할 수 있다. 연구에 필요한 충분한 수의 중성자를 얻는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원자로에서 중성자를 얻을 수 있다. 원자로에서는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며, 그 과정에서 열과 중성자를 얻을 수 있다. 이 열로 물을 데워 그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이다. 발전소에서는 중성자 실험을 할 수 없지만, 중성자를 꺼내 쓸 수 있는 연구 목적의 원자로에서는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한국원자력연구원에는 ‘하나로(HANARO)’라는 멋진 이름의 연구용 다목적 원자로가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중성자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양성자를 액체 수은이나 베릴륨 같은 물질에 충돌시켜 튀어나오는 중성자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원자로가 필요 없는 유용한 방식으로, 이 또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활발히 연구 중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또는 보이는 만큼 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