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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약’이 숨 쉬는 곳,
과학과 동물복지가 만나는 지점


연구장비교육·지원처 동물실험실

이곳은 신약과 신소재, 생명 현상의 비밀을 밝혀내는 실험의 장(場)인 동시에, 작은 생명을 돌봐야 하는 책임의 무대다. 연구의 조건을 갖추고 실험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노력, 그리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복지를 지키려는 노력은 늘 팽팽히 맞선다. 하지만 그 긴장 가운데 과학의 가능성을 믿고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동물실험실의 구성원들이다.
  • Words. 편집실   Photographs. 전경민
UNIST 생명 연구의 심장부 SPF 시설의 사명

2010년 건립된 동물실험실은 UNIST의 기초과학, 신소재, 생명 연구의 전 임상 테스트를 주도해 왔다. 동물 관리를 책임지는 이윤진 수의사의 표현에 따르면, 이곳의 실험동물은 일명 ‘살아있는 시약’으로 불린다. 유통기한과 농도가 중요한 시약처럼, 실험을 위한 동물들 역시 건강과 유전적 조건이 균일해야만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신뢰성을 지탱하는 핵심이 바로 SPF(Specific Pathogen Free, 특정병원체 부재) 시설이다. 따라서 이는, 이곳의 동물들은 특정 병원체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상태에서 길러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실험동물의 건강과 유전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습도 조절부터 공기 정화, 멸균 절차 등 그 환경에 대한 모든 관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물실험실 구성원들의 헌신은 단순히 동물의 생존을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실험동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연구자가 의도한 변수만을 검증할 수 있고, 동일한 조건에서 반복 실험이 가능해야 비로소 과학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다. 결국 동물실험실의 하루하루는 작은 점검과 기록의 연속이지만, 그 축적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 된다.

‘싸움의 선물’로 완성된 독보적 시스템

동물실험실의 하루는 방호복을 입고 소독 절차를 거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작은 먼지 하나, 미세한 오염 요소 하나가 곧 실험 전체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관리자는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밤새 물은 잘 공급됐는지, 혹은 동물이 예기치 않은 행동을 보이진 않았는지, 눈빛 하나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박경수 연구원의 말처럼 “이런 섬세한 관찰과 헌신이야말로 연구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보이지 않는 힘”인 것이다.
이 신뢰성의 토대 위에 실험동물 연구의 주인공인 마우스와 랫이 있다. 이들의 장점은 세대 주기가 짧아 연구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작은 체구 덕분에 다루기 편리하며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년 이상 쌓여온 방대한 데이터, 그리고 인간과 97%나 닮아 있는 유전적 유사성이 연구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라고 한다.
그렇다고 동물실험실의 정체성이 단순한 관리나 데이터의 양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더 많은 실험을 원하는 연구자의 요구와, 청정도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관리자의 원칙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긴장감 속에서, 오히려 이곳만의 시스템이 완성됐다. 일명 ‘싸움의 선물’이라 불리는 합의의 결과가 다른 기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모든 장비와 도구를 철저히 멸균하고, 고청정도의 실내에서만 실험을 진행하는 체계. 이러한 시스템이 바로 동물의 질을 보장하면서도 안정적인 연구 성과를 가능케 했고, 더 나아가 UNIST 동물실험실이 동물실험의 우수 시설로 자리매김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연구와 복지의 접점 수의사의 소명

“동물병원에서 살리다가 이제는 죽이러 오셨네요.” 이윤진 수의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들었다는 말은 그의 역할이 품은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그는 ‘실험실의 수의사’로서 동물을 “어떻게 잘 죽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구 윤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수의사가 가장 강조하는 원칙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3R(Replacement, Reduction, Refinement)이다. 세포나 하등동물로의 대체, 최소한의 개체 수로 줄이는 절차, 고통을 줄이기 위한 개선이 모두 과학적 가치와 동물복지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한다. 특히 동물실험을 하는 기관의 수의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는 ‘인도적인 종료 시점’을 통제하는 일이다. 예컨대 암세포 주입 실험에서는 종양이 1cm에 이르거나 체중이 20% 이상 줄어드는 순간, 실험을 중단하고 안락사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심리적 갈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교육을 맡고 있는 박수아 연구원은 이에 대해 “초보 연구자들은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어떻게 죽이냐’며 힘들어 한다”고 귀띔했다. 이 수의사 역시 “수많은 동물을 다루다 보니 번아웃을 겪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동물의 삶을 명예롭게 마무리하도록 돕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관찰이 낳은 성과, 교육이 완성하는 연구

관리자의 역할은 차가운 데이터 관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죽은 어미 대신 남겨진 새끼 쥐들에게 멸균 사료로 만든 이유식을 먹여 살려낸 경험은, 실험동물을 ‘살아있는 시약’으로만 다루는 규범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세심한 관찰이 거대한 연구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경수 연구원은 케이지를 교환하던 중 소음에 놀라 뒤로 넘어지며 사지를 떠는 쥐를 포착, 간질을 의심하며 연구자에게 알렸던 경험을 들려줬다. 이후 연구자는 해당 개체가 가진 PCγ1(Phospholipase C-gamma 1) 유전자가 간질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논문으로 성과를 냈다고.
이렇듯 과학과 인간적 감정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동물실험실은 UNIST 연구 지원만의 차별성을 키워왔다. 특히 대학으로서는 드물게 7테슬라 MRI를 비롯해 마이크로 CT, 옵티컬 이미징 장비 등 고성능 영상 분석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장비들은 ‘연구장비교육지원처’의 체계적 지원을 통해 그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선배의 구두 전승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비 사용법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1:1 맞춤형 컨설팅이 제공되어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르게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도출되는 연구 성과는 단순한 데이터의 축적을 넘어, 사람과 과학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의미가 크다.

생명과학 연구의 허브를 향해

15년을 채운 시설은 곳곳이 낡아가고, 늘어나는 수요에 공간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단순한 사육장이 아닌 연구지원센터”를 지향한다. 이에 대해 이윤진 수의사는 “UNIST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부울경 지역 기업·기관과 연계해 더 큰 연구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를 위해 UNIST 연구원들은 이곳의 경험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며, 동남권 연구자들을 위한 교육 거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조용히 돌아가는 환기팬의 소리, 사료를 먹는 작은 동물의 움직임, MRI 속 빛나는 데이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과학의 미래가 자라고 있다. UNIST 동물실험실은 이렇듯 대한민국 연구 생태계의 ‘생명의 섬’으로 오늘도 쉼 없는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