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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가치, 기업보다 사회 먼저
대물림되는 마음, 이어지는 나눔


운당나눔재단 이상현 이사장

‘창업 지원 10억 원 기탁’
운당나눔재단의 지난 6월 기부 소식은 간결했지만, 그 뒤에는 길고 단단한 이야기가 있었다.
고(故) 이종하 선생(1대)의 고향 울산에 대한 애정, KCC정보통신을 일으킨 이주용 명예회장(2대)의 실용감각, 이상현 이사장(3대, KCC오토그룹 회장)의 미래지향적 실행력,
그리고 “돈을 벌기는 쉬우나, 쓰기는 어렵다”는 대를 이은 신념이 그것이다.
이 이사장은 말보다 행동으로 울산의 내일을,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가능성의 다리를 놓는 인물이었다.
  • Words. 편집실   Photographs. 전경민
이상현 운당나눔재단 이사장
1대가 나눈 ‘공간’이 ‘기회’로 확장

정부의 중화학공업 정책과 석유화학·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울산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 급성장했다. 신시가지 개발, 사원 주택 단지 조성, 도시 기반 시설 확충이 이어지며 성장은 더욱 빨라졌고, 동시에 체육 인구 역시 자연스레 늘어났다.
그러나 울산의 성장이 미처 주민 편의나 문화적 인프라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때다. 자연히 도내 체육대회는 울산초등학교 강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 마당에 주요 행사가 있으면 전부 마산과 진주로 쏠리기 일쑤였다.
1973년, 이를 바로잡기 위해 울산시체육회가 손을 걷어붙였다. 울산실내체육관건립추진위원회를 꾸려 1976년 6월 이종하 선생의 지원으로 기공식을 가진 데 이어, 이듬해 9월 28일 준공된 체육관이 ‘종하’라는 2음절을 더해 종하체육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됐다. 그리고 2개월 뒤인 11월 26일, 이종하 선생은 총 1억 3,000만 원이 투입된 시설을 울산시에 기부, (故)이종하 선생의 뜻이 깃든 종하체육관은 이후 울산 시민의 자존심이자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성장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하체육관의 의미는 다소 변화했다. 울산이 중후장대한 산업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바이오·창업 생태계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프라 설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로부터 나눔의 뜻을 이어받은 운당 이주용 명예회장은 종하체육관을 선대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문화·창업·교육적 수요를 아우를 수 있는 복합공간 ‘종하이노베이션센터’로 재구성했다. 아버지가 물리적 공간을 기증했다면, 아들은 그 공간에 내일의 가능성을 더해 세상에 내놓은 셈이다.
지난해 8월 닻을 올린 운당나눔재단의 설립 배경은 분명하다. 기부를 통해 지역공동체 발전에 이바지한 고(故) 이종하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를 잇는 나눔으로 지속 가능한 공익 활동의 기반을 세우는 일이다. 그리하여 운당나눔재단은 ‘나눔으로 공존하는 사회’, ‘어린이·청소년의 꿈이 실현되는 사회’, ‘청년의 도전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표방한다.

2대: 시대를 꿰뚫은 눈, 한국 IT의 기초를 놓다

지난 10월 KCC오토그룹 사옥에서 만난 이상현 이사장은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일찍이 사회에 발을 내디뎠던 이주용 명예회장의 서사를 들려줬다. 능숙한 영어 실력으로 미군 통역을 맡으며 험난한 시대를 헤쳐 나갔던 고등학생 시절, 서울대학교 입학 후 유학을 떠나 접시를 닦고 잔디를 깎으며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아버지의 미국에서의 고된 삶을 그는 애달파 떠올리며, 시대가 짊어지게 한 청춘의 무게를 담담히 전했다.
“1955년 유학을 떠나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취업은 쉽지 않았다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미시간대 사회과학연구소에 들어간 것이 아버지 인생의 전환점이었대요. 우연히 컴퓨터의 세계에 눈을 뜨고는 IBM 본사에 입사하셨죠. 당시 글로벌은행들이 제시한 높은 연봉을 뒤로하고, ‘이왕 컴퓨터를 할 거면 배울 게 많은 곳으로 가겠다’고 결단하신 겁니다. 집안의 도움 없이 그 시절을 아주 치열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던 것 같아요.”
이 명예회장은 경제학자에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 초, 한국에 IBM 지사가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직접 IBM 회장에게 한국 진출을 요청했고, 결국 한국 IBM 설립과 대한민국 IT 산업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귀국 후에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컴퓨터 운영을 맡아 산업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의 이렇듯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은 KCC정보통신 설립으로, 그리고 지금은 운당나눔재단을 통한 나눔 철학으로 이어지며 시대를 잇고 있다.

그의 기부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울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투자였다.
인재를 키우고, 그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3대: ‘스스로 서라’는 위대한 유산 잇기

이상현 이사장은 “아버지의 철학은 언제나 돈보다 앞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이주용 명예회장에게는 고연봉이라는 개인적 안락보다, 연봉이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더라도 고국에 IT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더 큰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과 실천은 그 아들인 이 이사장에게도 삶과 나눔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이 됐으리라.
“엄격하고 강직하셨던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좀처럼 타협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저에겐 너무 높은 기준이 됐죠. 칭찬보다 꾸지람에 더 익숙했고, 끊임없이 ‘스스로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기대와 압박 속에서 경쟁심이 자랐는지,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버지와는 서로를 의식하는 라이벌 같은 관계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도 돌아보면, 그 긴장된 환경이 오히려 제 독립심을 단단히 다져 준 게 아닌가 싶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확립된 자신의 가치관을 이 이사장은 ‘실용(實用)’이라 정의했다. 형식보다 실질을, 관례보다 변화를 중시했으며, 두려움을 극복하며 도전했고, 지켜야 할 약속 앞에서는 신뢰를 보였다. 또한 실력은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치열한 관계 속에서 다져진 이러한 철학은 이제 운당나눔재단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울산의 미래, UNIST에서 찾다

종하체육관에서 종하이노베이션센터, 그리고 운당나눔재단으로 이어진 선택은 그 나눔의 대상을 ‘공간’에서 ‘기회’로 확장하는 일이었다. 이주용 명예회장은 ‘당시 사재의 절반인 600억 원의 사회환원’의 뜻을 2017년 공식적으로 내비친 후 운당나눔재단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812억 원이 넘는 기부를 실행하거나 약정했다. 그리고 이 이사장은 특히 울산지역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과 청년 인재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UNIST에 대한 대규모 기부가 바로 울산의 ‘도심 공동화’를 막고, 중화학 중심 도시를 ‘소프트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한다. 바로 지역 인재와 기업이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UNIST 출신 학생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어렵게 키워 놓은 인재들을 지역에서 붙잡지 못하고 잃는 것 같아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창업·벤처 네트워크 등 여러 모임에 가보면 UNIST 학생들이 유독 눈에 띄더군요. 신생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탄탄하게 잘 준비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이들이 지역에 남아 제대로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을 키우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국 그의 기부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울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투자였다. 인재를 키우고, 그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그의 바람처럼, UNIST가 울산의 젊은 인재들이 머물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희망의 터전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