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플라스틱은 없애는 게 아니라
잘 남겨야 합니다


리플라 _ 서동은 대표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0년 2억 4,300만 톤에서
2019년 4억 6,000만 톤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그중 9%만이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플라스틱은 다른 소재가 섞이면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플라는 특정 플라스틱 성분만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이용해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에 새로운 솔루션을 제안한다.
‘플라스틱은 없애는 게 아니라 잘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속가능한 플라스틱의 순환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
리플라가 우리의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 인터뷰어 _ 박향아   사진 _ 홍승진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독자분들에게 리플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리플라는 미생물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을 상용화하는 기업입니다. 미생물이 PP라는 재질을 제외한 나머지 재질을 분해할 수 있도록 해서, 재활용 플라스틱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 중인 플라스틱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잘 남기는 방법, 그러니까 제대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2019년에 법인을 설립하여 2명의 직원과 함께 출발한 리플라는, 이제 직원 21명과 함께 우리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미생물을 활용한 플라스틱 재활용’이라는 리플라의 비전의 시작은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로 플라스틱 재활용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창업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어요.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청소년 과학 탐구대회’에 참가했는데, ‘재활용 산업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라’는 주제를 받게 된 거예요. 직접 재활용 공장을 찾아가 사장님들을 만나면서 기존의 플라스틱 재활용 방식의 한계를 확인하게 됐고, 생물학적으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이 재활용 시장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도 갖게 됐어요. 선례가 없는 일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사업적으로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판단됐고요. 그렇게 수상 실적을 위해 참가한 대회에서 우연히 만난 ‘연구 과제’가 저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UNIST 입학과 전공 선택, 이후의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코딩이나 직접 납땜을 해서 로봇이나 제품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생명공학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분야였는데, 대회 참가를 계기로 관련 분야에 관해 알아보면서 진로가 바뀐 거죠. 무엇보다 직접 재활용 공장 사장님들을 만나서, 이 연구의 필요성과 경제적 가치에 대한 현장의 이야기를 접한 것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게 UNIST로의 진학을 결정하게 된 후, 관련 주제를 연구 중이신 교수님께 연락해서 입학하면 랩실에서 이런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말씀도 드렸고요. 덕분에 입학과 동시에 한 교수님께서 빌려주신 실험실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전공 선택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조언도 들을 수 있었고요. 창업을 염두에 둔만큼 '창업인재(특기자)전형'으로 UNIST에 지원했어요. '생명공학'을 주전공으로 택했으나, 당시 해당전형의 조건이 '벤처경영'을 부전공하는 거였죠. 창업하고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생명공학 수업뿐만 아니라, 재무제표 쓰는 법과 같이 경영학 수업에서 배운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 셈입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갖게 된 관심이 UNIST 입학 후 보다 전문적인 연구로 이어지고, 대학 시절 창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가 아닌, 학생의 신분으로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제 연구가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박사 과정을 밟으며 탄탄한 논문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창업도 그 이후로 계획 중이었고요. 그런데 UNIST와 협력하는 특허 법인의 변리사님과의 만남이 그 계획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취득한 특허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변리사님께 조언을 구했는데, ‘지금 창업을 해서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라는 답을 받았어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관련 직장에 들어가 경험을 쌓은 후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때는 도전을 망설이게 하는 여러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래 지금 해보자’라고 결정했습니다. 제가 귀가 좀 얇거든요. (웃음)

리플라가 개발한 바이오 탱크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우선 관련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독자들을 위해서 바이오 탱크는 무엇인지부터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바이오 탱크는 쉽게 설명하자면, ‘발효조’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러니까 미생물과 플라스틱이 이 발효조 안에서 반응하여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거죠. 기존에 없던 제품인 만큼 명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하다가, 일단 내부적으로는 바이오 탱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UNIST로의 진학을 결정하게 된 후,
관련 주제를 연구 중이신 교수님께 연락해서
입학하면 랩실에서 이런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말씀도 드렸고요.
덕분에 입학과 동시에 한 교수님께서
빌려주신 실험실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리플라에서 개발한 바이오 탱크의 핵심 기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먼저 플라스틱 재활용에서 PP(폴리프로필렌)가 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PP는 단단한 플라스틱 소재로 성분이 안전하고 내열성이 높아 전자레인지 가열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탄소로 수소로 이루어진 만큼 환경호르몬이 없어 친환경 제품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고요. 강도가 높아 자동차나 가전의 내장재로도 쓰이죠. 그러니까 플라스틱을 구성하는 다양한 소재 중 가장 안전하고 활용도가 높은 소재가 PP인 거죠.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성분은 여러 성분이 혼합되어 있어요. 플라스틱 페트병만 봐도 활용도에 따라 몸체와 뚜껑의 소재가 다르거든요. 그런데 재활용 공장으로서는 매일 50톤가량의 플라스틱이 들어오니까 일일이 손으로 분류할 수도 없고, 기계로 분류할 경우 섬세함과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리플라의 바이오 탱크는 PP 이외의 이물질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기술이 적용된 제품입니다. PP에 반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활용 공정에서 PP와 흔하게 혼입되는 PE(폴리에틸렌)를 잘 분해하는 미생물이 사용됩니다. PP와 PE가 동시에 투입되어도 PE를 대부분 분해하여 순도 높은 PP만을 남김으로써, 재활용 플라스틱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미생물을 찾아내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분해 미생물을 찾는 과정에서 리플라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워서 진행했습니다. 플라스틱만으로 생장하는 균주를 1차 분리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다음 해당 균주가 플라스틱 분해 효소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전자가 있는지, 분해 과정에서 전자 이동이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테스트해 보고, 정량적으로도 분해력이 뛰어난 균주들을 선발합니다. 현재까지는 플라스틱 분해 미생물 자체는 287종을 보유하고 있지만, 검증을 통과한 미생물은 9종입니다.

PP 순도를 98%에서 99.5% 이상으로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기술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1.5%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이 수치가 의미가 있는 걸까요?

현재 재활용 산업은 ‘다운 사이클링’ 위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재활용 공정을 거치면서 품질이 낮아지게 되고 기존 용도보다 낮은 용도로 재활용되는 거죠. 당연히 재활용 플라스틱의 단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고요. 저희는 플라스틱을 잘 남기고 싶습니다. 재활용 공정을 거쳐서 기존의 용도 만큼, 아니 더 질 높은 플라스틱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거죠. 그러려면 PP의 순도가 높아야 하는데요. 순도 98% PP는 자동차나 가전제품의 기준이 되는 플라스틱 인장 강도 기준에 못 미치거든요. 강도가 낮은 다른 이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PP 순도를 99.5%까지 높이게 되면 자동차나 가전제품에도 활용이 가능해집니다. PP 순도 1.5%의 차이가 재활용 플라스틱의 활용 범위와 가치를 놀랍게 향상시킬 수 있는 거죠.

연구를 시작한 2016년부터 8년 동안, 고집스레 한 길을 걸어왔기에 얻을 수 있는 값진 성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시장에서 선행된 연구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막막했어요. PP 성분만 남기려면 PE를 제거해야 하는데, PE의 경우 결합 에너지가 강하다 보니 관련 연구가 거의 없더라고요. 플라스틱 관련 특허가 10,000건 이상인데 유효 건수는 10건이 되지 않았어요. 기작 규명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용화를 하게 되면 ‘제품에 대한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때부터 기술 개발과 함께 기작 규명을 병행했습니다. 이론적 확신은 있는데 이를 실험 결과로 증명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어요. 우리의 연구에 신뢰를 더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반복이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가 있는데요. 먼저 막연한 자기 확신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무수히 많은 실험을 직접 하면서 ‘분명히 가능하다’는 확신이 마음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2~3년 동안 실험 데이터가 잘 안 나와도 우리가 방법을 못 찾은 것인지, 분명히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 대회 참여를 하면서 만나게 된 재활용 공장 사장님들과 지속적인 응원도 도전을 이어가게 해준 원동력입니다. 확신이 있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사장님들을 찾아가서 “저 연구가 너무 힘든데 그만할까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그때 “서 대표가 하는 연구가 우리한테는 참 필요한 연구”라면서 “힘들어도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하는 연구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연구,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술이라는 확신. 그 확신이 저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고집스레 한 길을 걸어온 덕분에, 바이오 탱크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데요. 상용화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나요?

재활용 플라스틱 샘플 약 10kg으로 시편을 제작하여 물성(인장 강도, 굴곡 강도 등)을 측정하는 것이 상용화의 최종 단계입니다. 리플라는 실제 재활용 PP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플라스틱 샘플 10kg로 시험을 진행, 자동차 내장재나 가전 내장재에 사용될 수 있는 품질을 맞춘 상태입니다. 아울러, 미생물의 최적화 또한 100L 용적의 fermenter에서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톤 단위 이상의 기계에서 배양에 활용되는 용매 등에 대한 최적화가 남아있습니다. 현재 배양액 50L 수준 검증, 플라스틱 20kg까지 처리 가능한 상태로 물성 테스트 진행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7월에 연속 공정 가로 오픈형 발효조 기계 구조 검증, 8월부터는 500평의 공장을 매입하여 톤 단위 이상으로 실증할 계획입니다. 재활용 공장 고객분들이 이 기계를 편리하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현 재활용 공정 상황에 맞게 설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리플라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리플라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재활용 공장 사장님들이 좀 더 좋은 환경과 조건에서 행복하게 일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에 진척이 없고,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재활용 공장 사장님 200분 정도를 인터뷰했었거든요. 사장님들이 “이 부지에 다른 공장을 지었으면 좀 더 편하게 더 많은 수익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필요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하고 계신 거였죠. 그렇다면 나도 사명감을 가지고 해보자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기술로 재활용 공장이 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결국 환경에도 좋은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일차적인 목표는 바이오 탱크를 국내 재활용 공장에 좋은 조건으로 많이 설치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는 해외 시장에서도 우리 기술을 인정받는 것인데요. 해외 현지 엔지니어링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발효조 제작은 현지에서 진행하고, 배양액 제공 및 관리 노하우를 리플라에서 협조하는 식으로 해외 확장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현재 약 20개국, 30개 업체와 수출 관련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런 과정들이 쌓여서 리플라의 성장은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