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에너지화학공학과 김영식 교수 연구실(YK group) 내 ZeF 팀은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 이하 움프)로부터 이색적인 제안을 받았다. 움프는 자연과의 공존을 주제로 하는 영화제인 만큼 친환경적인 행사 운영을 고심하는 단체다. 그러한 움프가 올해는 자전거 동력으로 영화를 상영해 탄소 배출이 없는 일명 ‘움프페달극장’이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래서 그 기술개발을 의뢰하기 위해 ZeF 팀을 찾은 것이다. 이왕근 연구조교수는 흥미로운 제안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라 관심이 있었죠. 매년 영화제에도 방문하고 있고요. 시민들이 직접 자전거를 구동해 친환경 에너지를 발전하고 이를 통해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젝트라고 해서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발전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장, 공급하기 위해서는 저희 팀의 연구 분야인 배터리 시스템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 지식을 직접 실증해 볼 기회라고 생각해 프로젝트에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움프페달극장 프로젝트에는 이왕근 연구조교수를 비롯해 배준호‧이승민‧장정범‧주은서‧권민서 연구원, 김현진‧김재헌 인턴 이렇게 8명이 참여했다. 목표는 자전거 동력으로 생산한 에너지를 영화 상영 전력으로 안정적으로 전환하는 것. 그렇게 3개월간 자전거 동력을 이용한 발전-에너지 저장-영상 송출장치 시스템 개발에 몰두했고, 끝내 성공했다.
원리는 이렇다. 자전거 뒷바퀴에 영구자석을 부착하고, 페달 회전을 통해 코일 내 전자기 유도를 기반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그 뒤 생산된 전력을 이차전지에 저장해 빔프로젝터를 구동시키면 된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결대 쉽지 않은 기술이다. 여기에 더해 ZeF 팀은 그들의 주력 연구 기술인 화재 차단 특수 방화물질과 실링재를 더한 신개념 배터리를 적용했다. 평소에는 방화물질이 침지 된 채 구동되지만, 비상시에는 즉각적으로 배터리 내부로 침투해 화재 전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안전성이 강화된 배터리다.
빔프로젝트를 구동시키려면 500W급 전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10대의 자전거를 연결해 동시에 페달을 굴렸다. 움프페달극장은 10월 21~28일 본 영화제에서 15분가량의 단편 영화를 총 11회 상영했다. 전체 발전 시간은 약 120분으로 총 611Wh의 전력을 생산했다. 영화 상영뿐 아니라 3대의 자전거 발전으로 버블머신도 운영해 관람객들의 참여와 관심을 유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움프페달극장이 문을 열기까지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굴려 에너지를 생산할 때 페달링이 약해져 전력량이 감소하면 안정적으로 영화를 송출할 수 없다. 그리고 10대의 자전거는 개인의 체력 차이에 따라 제각각 발전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쪽에 과부하가 발생해 화재의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10~15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빔프로젝트를 구동하기 위해 10대의 자전거가 발전한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와 균일하게 발전할 수 있는 컨트롤 박스를 개발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복병은 따로 있었다. 개발 기간 동안 연구원들이 수시로 자전거 페달을 굴려봐야 하는데, 평소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던 연구원들의 체력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움프페달극장이 문을 열자, 관람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회당 20여 명의 지원자를 모집해 10명씩 교대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는데, 영화제 기간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약 160명이 참여해 스크린을 밝혔다. 지원자들은 ‘지구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어 뿌듯하다’, ‘재미있다’, ‘얼마나 전력이 생산되는지 궁금하다’, ‘직접 밟은 페달을 통해 전기가 생산되다니 신기하다’며 움프페달극장에 기꺼이 동참했다.
영화 상영이 없을 때도 관람객들은 친환경 발전장치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러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ZeF 팀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연구실 밖 일반인들과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배준호 연구원은 “학문적인 연구나 국가, 기업과제에만 참여하다가 일반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새로운 경험이 됐다”면서 “앞으로도 일반인들과 함께할 기회가 많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정범 연구원은 “저희가 연구하는 배터리가 연구실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행사에서 많은 분의 참여를 이끌어 뿌듯했다”며 “본 프로젝트가 시민들이 친환경 활동을 몸소 실천하고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움프페달극장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에 친환경 기술에 관한 관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됐고, ZeF 팀에게는 연구실 밖으로 눈을 돌리는 기회가 됐다. 주은서 연구원은 “실험실 밖에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기술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연령대나 성별에 맞게 실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전자기 유도 현상과 전력 변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승민 연구원은 “이번에는 처음이라 발전기를 잘 운용하는 데 급급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어렵기만 한 과학 이론이나 환경 문제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운용 원리를 설명하고 질문도 받는, 관객과의 교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자전거와 발전기 대부분은 움프 측에서 회수했지만 연구실에도 추가 연구 목적으로 일부가 남아 있다. ZeF 팀은 기술을 조금 더 고도화해 응용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저희는 배터리를 연구하는 팀입니다. 자전거 발전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등에서 생산된 전력을 안전하게 잘 저장하는 것이 목적이죠. 이번 프로젝트는 자전거 동력 같은 불안정한 전력 발전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저희 연구를 지역사회에 알릴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ZeF 팀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일반인들과 만날 기회는 앞으로도 더 있을 것 같다. 움프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프로젝트로 이들을 만나게 될까? 부디 ZeF 팀이 계속해서 마음껏, 세상에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