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안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외부 병원균이 침투하면 면역 시스템은 이를 감지하여 세균을 직접 죽이거나 세균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게 된다. 이 면역 시스템은 자신(Self)과 남(Non-Self)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면역 반응(Immune Response)이 유도되지 않지만 남에 대해서는 면역 반응이 유도된다.
면역 시스템은 크게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으로 구분된다. 병원균에 대해 즉각적인 방어를 담당하는 것이 선천면역이고, 적응면역은 병원균의 특정 항원에 대한 기억을 통해 얻어지는 면역을 말한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시스템이 남과 나를 구분하지 못할 때 생긴다.
“면역 시스템이 자신과 남을 구분하지 못할때 다양한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루퍼스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유발됩니다. 그리고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다른 대부분의 염증성 질환 또한 선천면역체계의 이상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생명과학과 박성호 교수팀은 이러한 면역 시스템 중에서도 대식세포, 단핵세포, 수지상세포 등으로 구성된 선천면역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선천면역세포가 적절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자가면역질환, 염증성 질환, 대사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진 만큼 이들 세포의 주요기능을 들여다봄으로써 여러 질병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 선천면역세포 가운데서도 핵심은 바로 ‘대식세포’이다. 대식(大食)이라는 이름처럼 이 세포는 몸 안에 들어온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먹어치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인체내 모든 조직에 존재하고 있는 대식세포는 다른 면역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는 신호수단인 사이토카인을 생산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대식세포는 뼈가 계속 분해되고 만들어지는 과정 중 특히 분해되는 과정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골수/뼈에 존재하는 대식세포 중 특수한 대식세포가 있는데 바로 ‘Born Eater’라고 불리는 파골세포입니다.”
연구팀은 대식세포 관련 연구 과정 중에서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나 골다공증과 같은 질환에서 그 수와 활성이 증가하는 파골세포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다른 세포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파골세포만을 특이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진행됐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대한 박성호 교수의 관심은 미국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Hospital for Special Surgery라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에서 근무했는데, 담당 의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 질병이 치료에 어려움이 많고 연구내용도 부족하다는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출발한 연구가 UNIST에서 꽃을 피워가는 중이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에요. 많은 병은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세포들이 있는데 그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치료하는 일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아직은 힘든 얘깁니다. 새로운 방법 없이 우리가 원하는 세포만을 Targeting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가 원하는 세포들만 선택적으로 없애거나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를 하는데요, 그런 부분의 일환으로써 저희 관절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박성호 교수팀은 대식세포로부터 유래되는 파골세포의 분화 과정과 관련된 기전을 분석하여 파골세포만을 특정적으로 표적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파골세포에서만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RANKL 반응성 Super Enhancer들을 찾은 것이다. 파골세포의 형성에 중요한 인자로 알려진 NFATC1 유전자 가까이에 슈퍼 인핸서(Super Enhancer)가 형성되고 이것이 파골세포에서만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NFATC1 슈퍼인핸서 RNA를 선택적으로 저해하면 파골세포의 형성이 억제되는 것을 관찰했다. 비암호화 RNA는 단백질을 암호화하지는 않지만, 분자 서열의 특이성 때문에 치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RANKL은 파골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파골세포가 뼈를 흡수하는 과정을 수행하게 하는 대표적인 파골세포 자극물질입니다. 슈퍼 인핸서는 세포 분화 과정에서 세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근처에 형성되는 경우가 많고요. 이러한 기전 연구를 통해 파골세포만을 표적 치료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박성호 교수팀의 발견은 파골세포만을 표적 치료할 수 있다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하고 이를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만이 진행된 상태고 류머티스성 관절염 정밀 치료법으로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단계가 남아있다. 하지만 치료법 개발에 큰 진전을 이뤄낼 발견임에는 분명하다.
박성호 교수팀의 연구실은 면역세포를 연구하는 연구실답지 않게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더 자세히는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야 한다. 전통적 방식의 동물실험이나 세포 실험과 같은 실험 기법 역시 사용하지만, 바이오 인포메틱스라고 하는 대규모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함께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험을 수행하면 나오는 결과치가 결국 데이터니까요. 세포작용의 원리나 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 과정에서의 특이점이나 변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누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개의 일을 모두 잘 수행하긴 어렵죠. 그래서 연구실 진입 장벽이 좀 높은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번 류머티스성 관절염 표적 치료 가능성에 관한 연구 논문 역시 실험과 빅데이터 분석이 함께 이뤄졌고, 연구원들과 손발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결국, 좋은 연구결과를 도출했고 연구원들의 역량도 그만큼 성장하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실험과 분석을 같이 수행하는 실험적 특징 때문에 공동 연구를 많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병원과 같은 3차 병원과 협업을 다수 진행하고 있는데요, 선천면역세포 관련 질환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들을 계속하고 있고, 보다 환자 중심적인 기초연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천면역세포에는 다양한 세포들이 있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박성호 교수팀은 그중에서도 선천면역세포가 Self vs Non-self를 어떻게 판별하는지 분자면역학적 관점에서 질문하고 있고, 다양한 질환에서 조직에 존재하고 있는 Tissue-resident 대식세포 기능 또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질환의 병리기전을 밝히고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 목표라고.
“만성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나 우리나라 사망률 1, 2위를 다투는 심혈관질환, 그중에서도 동맥경화와 뇌졸중 등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환자가 많은 질병임에도 기초연구가 많이 이뤄지진 않고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한 교수님께서 해주신말씀인데, ‘If you do good science, science will take care of you.’라고요. 기초연구의 영역에서 꼭 필요한 ‘Good Science’를 찾고, 그 해답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박성호 교수는 생명과학은 과학적 호기심에 더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움직이나, 우리는 왜 늙어가고 죽어가나 하는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인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생명과학자로서의 사명이다. 무엇을 연구하든 이러한 과학자로서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좋은 해답에 다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