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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 구조 모사기술로
패러글라이더 판도를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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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과
김주하 교수팀

올해 여름 화제를 모았던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는 고래를 사랑하는 인물로 나왔다. 특히 변론의 결정적 힌트를 얻었을 때마다 그녀의 머리 위로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유영하며 나타났는데, 그 고래가 바로 혹등고래다. 몸길이 최대 16미터(m)에 무게가 40톤까지 나가는 이 거대한 생명체는 덩치와는 다르게 수면 위로 힘차게 떠올랐다가 다시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동작을 자유자재로 펼친다. 바로 이 모습에서 김주하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패러글라이더 연구의 실마리를 찾았다.
교수님의 연구팀인 유체기반융합연구실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 __ 말 그대로 흐르는 물체가 유체잖아요. 고체 빼고는 다 연구할 수 있는 분야인데, 유체역학을 기반으로 다른 학문과 융합해서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람이 어떻게 흐르는지, 어떻게 하면 양력을 더 키울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하면 소음을 줄일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광범위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대표적으로 어떤 연구를 수행하셨나요?

A. __ 꽤 오래 전부터 생물학과 융합하는 연구를 수행해왔고 몇 가지 성과도 이뤄냈어요. 그중 하나가 ‘저소음·고효율의 에어컨 팬’이에요. 보통 에어컨 실외기는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소음이었어요. 기존의 팬은 회전 시 복잡한 공기 흐름을 발생시켜 소음을 증가시키고 에어컨 효율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죠. 산학연구를 통해 혹등고래와 조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혹등고래는 가슴지느러미 앞쪽에 혹이 붙어있는데 이 덕분에 물속에서 순간적으로 몸을 틀거나 방향을 전환할 때 생기는 소용돌이인 와류를 이용하여 양력을 유지해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또 조개 역시 표면에 홈 구조를 가진 덕분에 포식자를 피하거나 먹이를 사냥할 때 재빠른 몸놀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죠. 이 생체구조 원리를 실외기 팬에 적용해 소음을 2dBA(A가중데시벨) 저감하고, 소비 전력을 10% 줄이는 데 성공했어요. 지금은 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혹등고래 지느러미에서 원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이번에도 혹등고래 구조를 모사해 새로운 성과를 얻으셨다고 들었습니다.

A. __ 바다 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비슷한 유체역학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고래는 지느러미로 물의 흐름을 받아치며 양력을 만들고, 새는 날개로 바람의 흐름을 받아 양력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번에 패러글라이더 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혹등고래 구조를 모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혹등고래가 물속에서 수면 위로 힘차게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동작을 수 있는 건 가슴에 있는 큰 지느러미에 달린 돌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고, 그 구조를 패러글라이더에 적용했더니 속도와 비행거리에서 좋은 성능을 보여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개선된 것인가요?

A. __ 패러글라이더가 날아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300킬로미터(㎞) 정도에요. 이 거리를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거죠. 날개와 바람이 만나는 각도를 받음각이라고 하는데 패러글라이더는 이 받음각이 굉장히 많이 바뀌기 때문에 아주 넓은 받음각 범위에서 양력을 얻을 수 있도록 날개가 디자인돼야 해요. 혹등고래 가슴지느러미에 있는 울퉁불퉁한 돌기가 유영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이미 다른 연구에서 검증된 사실이었는데, 이를 패러글라이더 날개에 적용했을 때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느냐를 검증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날개를 돌기처럼 울퉁불퉁하게 디자인하고, 수치상으로 성능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제품화를 위한 마지막 단계로 세계패러글라이더 월드컵에 출전해 성능과 안전성을 테스트했어요. 첫 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저희 제품은 3등을 했는데, 두 번째 대회에서는 1등을, 세 번째 대회에서는 저희 제품으로 출전한 선수가 1, 2, 3등을 모두 차지하며 성공적인 테스트를 완료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실제 제품양산까지 완료된 상태입니다.

패러글라이더 개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__ 공학자는 늘 실용 가능한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산학연구가 많이 이뤄지는 이유죠. 우리 연구팀이 도전해볼 만한 과제를 찾아보던 중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스포츠선도기업 핵심기술 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됐고, 참여 업체 가운데 유체역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업체가 패러글라이더 제작회사인 ‘진글라이더’였습니다. 과제 도전을 결정한 순간부터 연구팀 학생들과 본격적으로 패러글라이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적용 가능한 유체역학 기술을 4~5개 정도 선별한 뒤 진글라이더의 송진석 대표에게 함께 모의할 것을 제안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과제를 진행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 __ 사실 지원사업 첫해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어요.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과가 더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진글라이더와 1년 정도 더 산학연구를 진행했어요. 연구비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부분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시제품을 만들어볼 정도로 기술 개발에 진전이 있었습니다.

계속 진행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제품개발까지 완료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A. __ 다행히 그 다음 해에 같은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안정적인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었어요. 1년간의 노력이 인정을 받은 거죠. 보통 연구가 성공해도 상용화까지 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려요. 실외기 팬의 경우에도 양산까지 가는 데 3년이 걸렸어요. 제작공정을 다 수정해야 하기 때문인데, 패러글라이더는 2년 안에 모든 공정이 완료되었어요. 그건 패러글라이더가 주문제작 방식이고 대부분의 공정이 수공업으로 이뤄져서 변경된 기술을 바로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의 다음 연구계획은 무엇인가요?

A. __ 패러글라이더를 시작으로 스포츠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는2024년 파리월드컵을 앞두고 양궁 관련 산학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패러글러이더 기술도 그렇지만 양궁 시장도 장비를 개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걸 연구에 참여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과학적인 접근과 연구가 이뤄지면 기술은 혁신적으로 바뀔 수 있어요. 패러글라이딩이 그 좋은 예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양궁 연구에서는 바람을 타고 씨앗을 뿌리는 풍매식물 구조를 적용해 화살과 활 구조를 개선해보려고 시도하고 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구팀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__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학생들이 박사 과정을 졸업하는 즈음이 되면 지도교수와 닮은 모습을 하게 돼요.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냈기 때문이겠지만 저는 연구팀 소속 학생들이 저를 닮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살려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연구팀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도 학생들이 하고 싶은 방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요. 너무 방향이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우리 연구팀의 방향은 학생들에게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좋은 성과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