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자연모사를 통한
탄소중립 기술 개발

  • 글. 류정기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의 열매 그리고 위기

산업화와 과학혁명을 통해,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물질과 시스템을 점점 작은 단위로 쪼개나아가며 우리는 원자 그리고 그보다도 작은 미세입자 수준에서의 다양한 현상을 잘 이해하게 됐으며, 단순화/부품화를 기반으로 한 대량 생산을 통해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이용해, 수송연료, 난방연료, 플라스틱 및 다양한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으며, 철, 금, 은, 구리, 코발트, 니켈 등의 금속을 이용해 수많은 건축물과 편리한 기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생태계와의 균형을 고려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에너지 및 광물 자원의 고갈, 환경 파괴, 급격한 기후변화 문제를 발생시켜 인류 생존을 위협하게 됐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노기술 (NT), 생명기술 (BT), 환경공학기술 (ET) 기술 등이 그 대안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나노기술은 1990년대 초 탄소나노튜브, 양자점의 발견을 통해 붐이 일어나, 소재 및 에너지 기술의 혁신을 주도해왔으며, 생명기술 및 환경공학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자연모방 (Biomimicry) 및 자연모사 (Bioinspiration) 기술

인류가 지난세기 말에서야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데 반해, 자연은 지구상에서 수십, 수억 년에 걸쳐 진화라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인류가 만들어 낸 나노/바이오 기술이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은 단순 소재와 요소기술의 탐구에 머물러 있는데 비해, 자연이 만들어 낸 나노/바이오기술은 다양한 기능성 소재들을 분자, 나노, 마이크로 수준에서 정교하게 배열해, 대단히 복잡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나노기술은 금, 은, 구리, 카드뮴 등 고가의 희귀금속을 통해서만 구현이 가능한 반면, 자연은 생명체 주변에 풍부한 원소 들을 이용해 동일한 기능을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광합성이다. 식물은 엽록체라고 하는 세포소기관 내에, 태양광을 흡수하는 엽록소(chlorophyll), 물을 분해해 산소와 전자를 추출하는 산소방출 복합체(oxygen evolving complex), 여기전자(photoexcited electrons)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산화환원체(redox chain), 여기전자를 이용해 생명활동에 필요한 ATP, NAD(P)H를 생성하는 환원반응센터(reaction center)등이 분자수준에서 정교하게 배치돼 있어, 태양광, 이산화탄소와 물만을 이용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게 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Ir, Pt, Rh, Ru 등과 같은 고가의 귀금속이 아닌 Mn, Ca, Fe, C, O, N 등과 같은 지구상에 풍부한 원소를 이용해 정교한 화학반응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단 광합성뿐만 아니라, 홍합의 수중 접착 단백질, 우리 몸의 골격을 이루는 뼈, 문어의 점착빨판, 자가세정 능력을 지니는 연꽃잎, 미세구조를 이용하여 구조색(structural color)을 만들어 내는 나비 날개, 벽 심지어 천장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게코 도매뱀의 발 등, 우리 주변에는 나노/바이오기술을 스스로 만들어낸 생명시스템의 예가 무수히 많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소재/시스템을 모방하여 자연소재/시스템을 이용하는 자연모방기술 (biomimicry)과, 더 나가가 자연시스템의 역설계 (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좀 더 발전된 소재/시스템을 개발하고자하는 자연모사(bioinspiration) 기술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1)
  • 뼈, 진주층 (pearl nacre) – 콜라겐, 하이드록시 아파타이트, 세포가 나노, 마이이크로 수준에서 정교하게 배열돼 있으며, 우수한 기계적 성질을 지니고 있어 나노복합소재 개발에 활용 가능
  • (2)
  • 광합성 – 엽록소, 전자전달체인, 효소, 무기물 등이 정교하게 배열돼, 태양광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포도당을 생산할 수 있음. 인공광합성, 태양전지 개발에 활용 가능
  • (3)
  • 효소 – 백금, 금, 이리듐과 같은 고가의 금속이 아닌, 주변에 충부한 철, 망간, 니켈 등의 전이금속과 유기 리간드를 정교하게 배열해, 높은 반응성과 선택성을 보여줌. 저가의 고활성 촉매 개발에 활용
  • (4)
  • 구조색 – 나비, 칠면조 등에서 관찰되는 현상으로, 다양한 소재를 빛의 파장대역과 유사한 영역대에서 규칙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염료 없이도 색을 구현할 수 있음. 광표백에 의한 성능 저하없이 색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광결정 개발에 활용
  • (5)
  • 단백질 접착제 – 홍합접착단백질의 화학적 특성을 모방하여, 수중접착제 개발
  • (6)
  • 문어의 빨판 – 문어의 빨판을 모방해 기계적 접착 패치 개발
  • (7)
  • 연꽃잎 – 미세구조 및 왁스코팅을 이용한 초발수 / 자가세정 표면 개발
  • (8)
  • 게코 도마뱀 — 발바닥의 미세 섬유구조를 이용한 반데르발스힘을 이용해 벽을 기어오를 수 있음. 이를 모방한 접착 시스템 개발
  • (9)
  • 소금쟁이 – 표면장력을 제어해 물에 빠지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높게 뛰어오를 수 있어, 이를 이용한 로봇 시스템 개발에 활용 가능
  • (10)
  • 육각형벌집(Honeycomb) 구조 – 고효율/고성능 구조재료 개발에 활용 가능
  • (11)
  • 상어피부 – 피부의 돌기가 물속에서의 저항을 매우 낮추는 기능을 함. 물에서의 저항이 매우 적은 전신수영복 개발에 활용됨
탄소중립을 위한 인공광합성 기술 개발

에너지화학공학과 류정기교수 연구실에서는 무한한 태양광과 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포도당 등을 만들어내는 식물의 광합성을 모사/모방한 인공광합성 시스템 개발을 주요주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자연광합성은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다양한 화학물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나, 이로 인해 특정화학물질에 대한 생산효율은 높지 않은 편이다. 또한, 식물은 자가 치유 기능을 지니고 있어, 엽록소와 같은 유기염료를 사용해 광화학반응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나, 식물내 특정 시스템만을 활용할 경우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무한한 태양광을 활용할 수 있는 자연광합성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원하는 특정화학물질 (예를 들어, 청정연료로 사용가능한 수소나 화학원료물질로 사용가능한 탄화수소 등)을 고효율로 생산할 수 있는 인공광합성 (artificial photosynthesis)시스템으로의 역설계가 필수적이다. 본 연구실에서는 광흡수물질, 산화촉매, 환원촉매를 자연광합성 시스템처럼 정교하게 조립해 태양광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광전기화학 시스템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각의 물질이 수용액하에서 가지는 정전기적 전하를 잘 제어하면, 정전기적 인력을 통해 원하는 물질을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순서대로 정교하게 조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자연광합성처럼 촉매 주변의 리간드 환경을 제어해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연꽃잎 효과를 모사를 통한 수전해 효율 향상 기술 개발

인공광합성 이외에도 최근에는 연꽃잎 효과 모사를 통한 수전해 전극의 표면개질을 연구하고 있다. 연꽃잎은 잎 표면의 미세 다공성 구조와 소수성 왁스코팅을 통해, 잎의 표면에서 물방울이 표면을 적시지 않고 쉽게 굴러 떨어지게 만듦으로써 자가세정 기능을 가지며, 이를 연꽃잎 효과 (lotus effect)라고 한다. 본 연구팀은 에너지화학공학과 이동욱 교수 연구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연꽃잎 구조를 역설계해 물방울 대신 수중에서 공기방울이 기판의 표면에서 쉽게 떨어지는, 초혐기 (superaerophobic) 기술을 개발했다. 미세한 구멍을 가지는 동시에 물을 매우 좋아하는 친수성(hydrophilic)의 수화젤(hydrogel)을 고체표면에 코팅하게 되면, 고체 표면에 기체 방울이 부착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거나 이미 부착된 기체 방울을 쉽게 떼어낼 수 있게 된다. 본 연구팀에서는 이를 수전해 시스템에 적용해 수전해 효율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수전해는 물을 분해해 수소와 산소를 만들어내는 반응인데, 이 때 생성된 기체가 수전해 반응을 수행하는 전극에 부착돼 수전해 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수전해 전극에, 연구팀이 개발한 초혐기 수화젤을 코팅함으로써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지 않고도, 수전해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음을 발견해, 다양한 후속 연구를 진행중이다.

UNIST의 생체모방/모사 기술 연구 동향

자연 그리고 생명 시스템은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되, 주변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형태로 진화시켜왔고, 그렇기에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이미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자연에서 찾을 수는 없겠지만, 생존과 가장 밀접한 에너지 그리고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힌트를 주고 있다. UNIST에서는, 본 연구실 외에도 많은 연구팀이 생체모방 및 생체모사 관련해 다양한 주제로 연구를 활발히 진행중이고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에너지화학공학과 이재성, 장지연, 장지욱 교수, 신소재공학과 조한희 교수 연구실: 인공광합성 기술 개발

에너지화학공학과 이동욱 교수 연구실: 생체모방 접착/접착 소재 개발

화학과 조재흥 교수 연구실: 생체모방 유무기 배위화학 연구

기계공학과 정훈의 교수 연구실: 생체모방 방오기술, 로봇, 생명공학 소자 연구

기계공학과 김주하 교수 연구실: 혹등고래 등을 모사한 유체역학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