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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 분야
전문인력 양성과

국제 공동연구에
힘 보탠다

글. 정모세 물리학과 교수 ‘가속기 인력양성 및 활용지원 사업’은 대학원 중심의 가속기 전문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
가속기 및 빔라인 분야 석·박사, 박사 후 연구원 등의 체계적 인력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총 6기의 대형가속기가 국가 주도로 구축 및 운영 중이며, 2022년까지 총 4조 57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자됐다. 포항에 있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 PLS-II와 4세대 직선형 방사광가속기 PAL-XFEL은 전자를 가속해 방사광을 발생시키고, 이를 이용해 원자 및 분자 단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첨단 연구시설이다. 증가하는 방사광 이용자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충북 청주에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개념의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추가로 구축 중이다. 경주에 있는 양성자가속기 시설인 KOMAC은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까이 가속한 후 물질에 충돌시켜 새로운 물질 생성을 연구하거나, 중성자 및 동위원소를 발생하는 연구시설이다. 현재, 파쇄중성자원 시설로의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대전에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RAON은 수소에서 우라늄까지 다양한 원소를 이온화해 가속한 뒤, 표적 원자핵에 충돌시켜 기초과학 연구에 필요한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는 장치이다. 부산 기장에는 서울대학교병원 주관으로 의료용 중입자가속기(탄소, 헬륨) 및 치료 시스템을 도입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대형가속기의 연구·개발, 설계, 구축, 시운전, 운영 및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가속기 분야의 체계적인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없어서, 각 대학과 여러 가속기 연구소가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가속기 연구소는 우수한 인력을 수급 받지 못했고, 대학은 졸업생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6년간 212억 원을 투입하는 ‘가속기 인력양성 및 활용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해당 사업에 포항공대 연합체(미래기반 가속기 전문인력 양성 사업단)와 고려대(세종) 연합체(가속기 및 빔라인 미래인재양성 교육단) 2곳을 선정했다. 미래기반 가속기 전문인력 양성 사업단에는 포항공대를 중심으로 UNIST, GIST, 동국대(WISE캠), 부산대, 서울대(가속장치), 조선대가 참여한다. 사업단에서는 포항가속기연구소 일부 장비를 활용한 현장 실습 기반의 가속기 인력양성을 추진키로 했다. 또한, 대학 간 교차 수강, 학점 교류, 공동가속기학교 개설, 국제가속기학교 참여 등을 통해 1개 대학이 가지는 분야별 한계성을 극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85명 이상의 석·박사 학위 소지자를 배출할 계획이다.
이 사업단에는 물리학과의 정모세, 허민섭, 김채운 교수와 전기전자공학과의 최은미 교수, 반도체 소재-부품 대학원의 신태주 교수 등 5명의 UNIST 교수가 참여한다. UNIST 연구진은 그동안 새로운 빔 물리 모형 및 수치해석 코드, 첨단 빔 진단 및 제어 장치를 활용해, 국내외에 운영 또는 건설 중인 대형가속기의 구축, 최적화 및 성능향상에 기여했다. 또 가속기 및 빔을 활용한 우주의 신비 탐구, 핵융합 관련 연구, 신소재·신약 개발, 방사광원·빔라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가속기 인력양성 사업의 첫 행사로서 '2022 ATE(Accelerator Technology Expert) 가속기 여름학교'가 실시됐다. 가속기 분야 최정예 인력양성을 목표로 첫발을 뗀 ATE 가속기 여름학교는 포항가속기연구소 과학관에서 8월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간 진행됐다.

“저장링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는 지도교수님 말씀에 혹해서 참가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알찬 수업 덕분에 실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김진균 연구원(2020 가속기 여름학교 참가)

7개 공동연구대(포항공대, UNIST, GIST, 부산대, 서울대, 조선대, 동국대 WISE캠) 교수로 구성된 국내 최정상 강사진은 학생 70여 명을 대상으로 가속기 분야 핵심 지식을 전달했다. UNIST에서는 2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시작된 가속기 인력양성 사업이 좀 더 활력을 얻으려면, CERN과 같은 해외 대형가속기 연구소와의 공동연구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가속기를 활용한 대형 연구에는 많은 전문인력과 시설이 필요하므로, 한 나라에서 수행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으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기관이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최신 실험 기법과 장치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신진 연구자들을 교육·훈련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국제 공동연구가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화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정보의 공유가 더욱 활발해진 면도 있다.
가속기 인력양성 및 활용지원 사업을 통해 배출된 전문인력은 국가 대형가속기 구축 및 운영, 차세대 가속기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의료용 가속기, 장치산업, 활용산업 등 다양한 가속기 관련 산업체의 산업화 기술 확보에 투입해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키울 것이다. 국내 대형가속기의 개발·구축·운영, 그리고 가속기 분야 국제 공동연구에서 UNIST에서 배출된 우수인력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 가속기란?

가속기는 전기를 띤 하전입자, 즉 전자나 양성자, 이온 등을 전기장을 이용해 속도 및 에너지를 높이는 장치를 일컫는다. 하전입자의 방향을 바꾸거나 일정한 공간에 가두는 데에는 자기장이 이용되며, 공기 분자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높은 진공도의 빔 파이프가 사용된다. 가속기의 역사는 1897년 음극선으로 조지프 존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고,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알파입자(헬륨원자 핵)를 금박에 쏘는 실험을 통해 원자핵이 있다는 걸 알아내면서 시작됐다. 이후 가속기는 기초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고, 의료·생명·신약개발 및 소재·물성 분야에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미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런스가 개발한 첫 번째 사이클로트론 모델은 그 크기가 10㎝에 불과했으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는 27㎞가 됐다. 가속기 사용 목적이 점점 고도화되고 사용자들이 원하는 실험의 난이도가 계속해서 높아짐에 따라, 가속기 기술 또한 더불어 발전을 거듭했다.[1]
하지만, LHC 같은 기초과학용 대형가속기들은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전체 가속기 숫자인 3만 대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50%는 이온 주입, 재료 표면처리, 신소재 연구에 쓰이고, 49%는 암 치료, 의료용 동위원소 생성, 생명공학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최첨단의 대형가속기 개발을 통해 확보된 기술들이 응용 분야에 자연스럽게 활용된 결과로서, 가속기 연구의 선순환적 구조를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참고 문헌] [1] 최준석, 『물리 열전 (상)』 (사이언스 북스, 2022). [2] 이병철, 『과학기술인프라 대형가속기 구축·운영 사업 분석』 (국회예산정책처,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