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강력해지는 태풍, 하늘에 구멍 난 듯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도심,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폭염과 열대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지구촌이 겪고 있는 심각한 기상재해로 국제사회는 이제 기후변화라는 용어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더욱 강력해진 자연재해의 원인은 산업혁명 이후 늘어난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지목된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현재(2006~2015년) 약 0.87°C 이상 상승했다. 기온 증가의 대부분은 인간활동 증가에 의해 늘어난 온실가스가 원인으로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말하는 다른 자연적인 영향은 0.1°C 이내로 무시할 정도라는 것이 기후변화 국가간 협의체(IPCC)가 최신 보고서에서 밝힌 공식적인 내용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온난화 가속화에 따라 지구 평균기온이 10년마다 0.2°C씩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030년부터 2052년까지 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C를 초과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1.5°C를 넘어 2°C까지 상승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실내 온도는 당장 0.5°C 높인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 평균기온이 1.5°C에서 0.5°C 더 상승하면 기후변화는 통제 범위를 넘어 인류와 자연 생태계에 되돌이킬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인류가 2100년까지 기온상승 폭을 1.5°C 이내로 제한할 수 있다면 현재의 기후변화는 이전 상태로의 점진적인 회복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해야 할까? IPCC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해야 하며, 2050년경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탄소중립이란 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으로,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해 탄소 ‘순 배출이 0’이 되게 한다는 뜻에서 넷제로(Net-Zero)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주요국가들은 국제 기후협약에 따라 늦어도 2050~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온실가스 총 배출량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 세계 5위, 2018년 8위에 이어 2019년에는 한 계단 내려온 9위를 기록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배출 정점 이후 탄소중립까지 남은 기간이 촉박하다. 201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7.2억 CO₂톤으로 1990년 대비 149% 증가한 수준이다. 제조업 중심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온실가스가 에너지와 제조 분야에서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탈탄소 에너지 전환과 함께 획기적인 탄소중립 제조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중립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목표 앞에서 UNIST는 탄소중립을 실현할 잠재성 높은 기술들을 연구 개발해 왔으며, 이미 유망한 우수기술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특히 선도적인 친환경 에너지,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 등에서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다.
탈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차세대 에너지로 주목 받는 것이 수소 에너지이다. 수소는 연소하는 동안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와 달리 해로운 부산물을 매우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수소는 다양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으나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부수적인 탄소배출을 최대한 억제해 깨끗한 방법으로 얻어야 한다. 청정 수소 생산에서는 이른 바 블루 수소와 그린 수소가 있다. 블루 수소는 천연가스 등에서 수소를 추출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모두 포집해 얻는 수소이다. 하지만, 블루 수소 생산에 필수적인 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이 아직까지는 실용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그린 수소는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 등으로 생산한 친환경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 해서 수소를 얻기 떄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다. 그린 수소 또한 수전해 기술의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건으로 현재 활발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UNIST의 유망기술 중 하나로 이산화탄소의 전기화학적 전환 반응을 통한 수소, 탄산염, 전기 동시 생산 연구를 꼽을 수 있다. 자발적인 용해 반응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수용액에 녹이면 탄산염과 수소 이온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고, 수용액은 산성을 띤다. UNIST가 개발한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은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외부 전원 없이 자발적인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수소, 전기, 탄산염을 생산하는데, 최근에는 분리막 없이 제조 과정을 단순화한 시스템을 이용해 고순도의 수소와 전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더욱 높였다.
수소 에너지에서 주목받는 것이 ‘암모니아’이다. 암모니아는 전통적으로 화학비료로서의 중요성이 높았으나, 최근 들어 수소 에너지의 저장 및 운송에 활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암모니아는 고온, 고압에서 하버-보쉬 반응을 통해 질소 분자 1개와 수소 분자 3개가 반응해 2개의 암모니아 분자를 생산하면서 수소를 효과적으로 저장한다. 그러나, 고온, 고압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에너지가 쓰이기 떄문에 효율성이 낮아진다. UNIST가 개발한 암모니아 제조 기술은 에너지가 적게 들어가는 저온, 저압 조건에서 암모니아를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다. 볼밀링 공정을 이용하게 되면 단순히 철구슬과 반응물을 함께 회전시켜 충돌에 의해 활성화된 철구슬이 질소, 수소와 반응하여 암모니아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UNIST는 또 연구실 규모를 넘어 실제 공정으로까지 스케일업(Scale-up)이 가능한 다양한 화학 공정에 관한 기술·경제·환경성 분석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탄소 포집 및 자원화 기술과 그린 수소 생산 기술에 관한 시스템 설계 및 스케일업, 경제적 타당성 분석,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유망기술의 기술·경제·환경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실증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UNIST의 촉망 받는 또 따른 기술은 태양광 에너지 기술이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태양열과 태양광으로 나눌 수 있다.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끓인 후 터빈을 돌려야 하는데, 이 방식은 효율이 높지 않아 끓인 물은 주로 난방용으로 사용된다. 많은 물을 데우기 위한 대형 설비와 뜨거운 물의 온도를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이다. 반대로 태양광은 태양열에 비해 에너지가 훨씬 크기 때문에 직접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서 발전용으로 유리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태양광 발전의 원리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반도체에 햇빛을 쪼이면 전자의 이동이 일어나서 전류가 흐르고 전기가 발생한다. 이 현상을 이용한 것이 태양전지인데, 대표적인 것이 실리콘을 사용하는 태양전지이다. 그러나, 실리콘은 제조 방법이 복잡하고 고온 공정으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쓰며, 거대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문제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목받는 것이 페로브스카이트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부도체, 반도체, 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독특한 구조의 금속 산화물로서, 간단한 용액공정과 저온공정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세대 태양전지로서 주목 받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UNIST 연구팀들이 계속해서 세계 최고 효율 개선을 이루며 차세대 태양전지 연구개발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 실리콘 태양전지 효율에 근접하고 있는 수준이다.
수소나 태양광은 에너지 생산단계에서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이지만 인류가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만 의존하기에는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이 심각하다. IPCC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배출량 저감뿐 아니라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들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제시한다. 이산화탄소 제거기술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제거하고, 이를 땅속이나 해저에 가두는 기술이다. 산림을 가꾸고 복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산화탄소 제거기술이라면, 여러 산업 공정 중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 저장, 활용하는 인공적인 기술도 있다.
최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이산화탄소를 회수, 제거하는 혁신적 기술 개발에 총상금 미화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 원)를 걸었다.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 및 폐기물 등에서 배출되는 가스들은 다량의 이산화탄소와 유해 화학물질들을 발생시키는데, 이를 화학적, 생물학적인 방법을 통해 유용한 화학제품으로 만드는 기술을 탄소 선순환 기술, 혹은 탄소 포집, 활용, 저장기술이라고 한다. UNIST에서는 세미 클러스레이트라는 4차 암모늄염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연소 전 이산화탄소 포집 공정에 적용하면 고가의 분리막이나 흡착제 및 흡수제를 사용하지 않아 비용이 낮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서 효율적이다. UNIST는 또한 철강부생가스로부터 개미산이나 생분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연구, 그린 수소를 이용하여 메탄올이나 디젤유를 생산하는 연구 등 실증 수준에 근접한 다양한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
UNIST의 탄소중립을 향한 도전은 연구개발을 넘어 기후변화를 통섭적으로 이해하고 미래를 혁신할 수 있는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9월에 개원한 탄소중립대학원이 그것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변화로 내일이 없는 세대에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경고하며 등교 거부 운동으로 기성세대에 큰 반향을 주었다. 혹시 여러분도 그레타 툰베리처럼 기후변화 문제에 실전적인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UNIST의 탄소중립대학원으로 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