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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위원회 검토 시나리오로
들여다본 탄소중립,
과학기술인을 중심으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데 이어 정부가 그해 12월 이 목표를 담은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LEDS)’을 UN에 제출하면서 탄소중립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 글. 김정수 한겨레 기후변화팀 선임기자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에서 탄소중립 선언까지

탄소중립은 온실가스를 최대한 배출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그만큼을 대기 중에서 제거해 순배출량이 0(zero)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70%가량은 화석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다. 탄소중립은 결국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에너지를 사실상 포기할 각오를 해야 넘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한국에는 특히 도전적인 과제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를 지닌 나라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발전 비중이 2019년 기준 40.4%로, 미국(24%), 일본(32%), 독일(30%), 영국(2%) 등에 비해 크게 높다. 게다가 2018년에야 온실가스 배출정점을 통과해 이미 1990년과 2013년에 정점을 통과한 유럽연합(EU)이나 일본에 비해 더욱 빠른 속도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탄소중립 선언을 늦출 수는 없었다. 독일·영국· 프랑스·덴마크 등은 2019년에 이미 탄소중립을 천명했고, 유럽연합은 지난해 3월 UN에 탄소중립 목표가 포함된 LEDS를 제출했다.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한 미국에서는 당시 차기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탄소중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9월 중국이 206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하고 한 달 뒤 일본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자 세계의 눈은 한국에 쏠렸다. 한국은 2017년 기준 세계 11위의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인데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국제사회에 개도국과 선진국을 잇는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이 되겠다고 약속해왔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예상하는 탄소중립 실현 방안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던져졌을 때 누구나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경로를 밟아야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은 지난 5월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가 검토 중인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가늠해 볼 수 있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따르는 전략은 단순하다. 각 부문에서 화석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만들어 쓴다. 또한 불가피하게 대기 중에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산림과 같은 흡수원에 흡수시키거나 탄소포집·활용·저장(CCUS)을 통해 제거하는 것이다.
탄소중립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이 시나리오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등을 통해 2050년 에너지 소비량을 2018년보다 소폭(3.5~5.3%) 증가하는 선에 묶어 두는 것에서 출발한다. 에너지 소비가 억제되어 2050년 발전량은 2018년 발전량 570.6테라와트시(TWh)보다 2.2~2.3배 많은 1243.8~1292.5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산업 시설이나 자동차, 건물 보일러 등에서 사용하는 최종에너지 형태가 대부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발전량이 2배 이상 증가한 상황에서 탄소중립에 다가가려면 우선 발전량의 59.5~61.9%인 769.3TWh가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충당돼야 한다고 봤다. 재생에너지 전문가들은 769.3TWh의 재생에너지 전기를 얻는데 400GW의 태양광과 100GW의 풍력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지난해까지 국내에 설치된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는 약 23GW다. 이 정도를 설치 운영하는 과정에 벌어진 사회적 갈등을 떠올려 보면 500GW의 설비 확충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일지 짐작할 수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재생에너지 다음으로 무탄소 신전원이 10.6~11.6%, 연료전지가 9.4~9.8%의 발전 비중을 감당해야 한다고 봤다. 원자력(7%)·천연가스(7.4~7.8%)보다 높은 비중이다. 하지만 수소 터빈과 암모니아 발전 같은 무탄소 신전원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여서 언제 상용화 될 지 불투명하다. 연료전지 발전은 특히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없는 경직성 전원이라며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전환 부문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석탄발전에서 크게 갈라진다. 1안은 탈석탄 도달을 전제로 한 반면, 2안은 현재 건설 중인 5기를 포함한 신규 석탄발전소 7기까지는 가동하는 것을 상정했다.

2018년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2억 6,050만 톤 2050년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5,310만톤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 부문의 역할과 책임

산업 부문은 2018년 2억 6,050만 톤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에 20% 수준인 5,310만 톤까지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3대 에너지 다소비 업종으로 꼽히는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정유업계의 설비 교체 투자와 기술개발이 필수적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100% 도입하고 코크스를 사용하는 기존 고로를 모두 전기로로 바꿔 2018년 배출량 대비 95%를 감축해야 한다. 시멘트업계에서는 유연탄 연료를 폐합성수지와 수소 열원으로 전면 대체하는 등 방식으로 55%를, 석유화학·정유업계는 전기가열로 도입과 바이오 원료 활용 등을 통해 73%를 줄여야 한다.
2018년 9,810만 톤이었던 수송 부문 배출량은 1.8% 수준인 180만 톤까지 줄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동차·철도 등 육상교통 분야에서 더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시나리오는 전기·수소차가 전체 차량의 76%를 넘고, 나머지 차량은 모두 바이오 에탄올과 바이오 디젤 같은 탄소중립 연료만 사용해야 할 것으로 봤다.
건물 부문은 제로 에너지 건물 신축, 기존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 고효율기기 보급 등으로 2018년 5,210만 톤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710만 톤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폐기물 부문도 폐기물 감량과 재활용 확대 등을 통해 2018년 1,710만 톤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440만 톤으로 줄여야 한다. 농축수산 부문은 가장 감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이 부문에서는 식생활 개선을 통해 육류 소비를 줄이는 정책까지 추진해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8년 배출량 대비 43%밖에 줄어들지 않는다.

도전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50년에도 1억 2,710만~1억 4,49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탄소중립을 위해 모두 흡수 또는 제거해야 할 배출량이다. 시나리오는 한반도 주변 해저 지층 분석 등을 토대로 탄소포집·저장(CCS)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대치를 6,000만 톤으로 잡았다. 포집한 탄소를 탄소중립 연료로 만들어 쓰는 등의 탄소포집·활용(CCU) 최대치 2,500만~3,500만 톤, 산림 등을 통한 흡수량 2,410만 톤을 더하면 흡수·제거 가능한 온실가스는 모두 1억 910~1억 1,910만 톤이 된다. 1,800만~2,580만 톤은 여전히 대기 중에 남는 셈이다. 환경단체로부터 시작부터 탄소중립을 포기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검토안을 보면 탄소중립이 얼마나 도전적인 목표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정권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에 기술적 불확실성을 메워 줄 과학기술, 경제적 부담과 불편을 기꺼이 감내해 줄 국민들의 의식 변화가 함께 하지 않고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 준다.
시나리오에서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핵심 수단으로 제시된 탄소포집·저장이 경제성과 안전성을 갖춰 대규모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DAC)해 탄소중립연료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 탄소포집·활용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인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민의 태도다. 탄소중립에 들어갈 비용은 정부 예산이든 기업의 투자금이든 결국 세금을 내고 상품과 서비스에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은 국민들에게 비용 부담뿐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참여할 것도 요구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건물 부문에 들어 있는 에너지 수요 추가 감축, 폐기물 부문에 제시된 폐기물 최소화와 재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양질의 폐자원 배출 등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농축수산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들어가 있는 대체 단백질 기술개발을 통한 식생활 개선, 육류 소비 감축 유도 등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