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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열고 공학·경영학 지나
퀀트 스토리텔러를 꿈꾸다


김민겸 학생(산업공학과)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기억의 시간이 80분밖에 되지 않는 ‘박사’와 가사도우미 ‘교코’, 그녀의 아들 ‘루트’가 함께 보낸 1년을 그린다. 이야기 속 박사는 수학 문제를 음악처럼 대하고, 그가 있는 환경에서 루트는 ‘수학은 리듬이자 음악’이라고 여기는 박사의 믿음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간다. 학창 시절 수학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을 들락거리며 배운 내용이 더 오래 남았다는 김민겸 학생의 고백은,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수학적 아름다움과 인생의 의미를 배워간다는 소설의 뒷이야기와 묘하게 겹쳐 있는 듯했다. 그에게도 수학은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사유의 박자와 호흡을 익혀 가는 하나의 리듬이자 음악 아니었을까.

  • Words. 편집실   Photographs. 전경민
국제 무대에서 데이터의 리듬을 타다

산업공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 김민겸 학생은 전에 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국제 퀀트 챔피언십 세계 1위’라는 성과가 알려지며 각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학교 안팎의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25 국제 퀀트 리서치 대회’ 결승 무대에는 전 세계 142개국, 1만 1,000여 개 대학에서 선발된 12명의 결선 진출자가 모였다. 김민겸 학생은 이 가운데 한국 예선을 넘어 본선에서도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콜럼비아대·인도공과대·옥스퍼드대 등 세계 유수 대학 참가자들을 제치고 거둔 성과인 데다, 6개월간의 치열한 몰입이 맺은 결실이자 데이터와 수학을 결합해 온 그의 사유 방식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했던 뜻깊은 결과였다.
“결과의 무게보다 과정의 밀도가 더 크게 남은 경험이었습니다. 순위와 상금이 아니라, 데이터를 바라보는 관점과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고 다시 확장해 나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어요.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퀀트라는 분야를 조금씩 풀어 설명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죠.”

수치에 안주하지 않는 전략

김민겸 학생이 퀀트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군 복무 시절 모은 자금으로 소액 투자를 하면서다. 처음에는 성과가 좋았던 종목에 열광하며 매매를 반복했지만, 수익의 크기와 변동이 운이나 감각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됐다고 한다. “왜 오르는지, 왜 떨어지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같은 결과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투자 성과의 배경을 수치와 구조로 이해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알고리즘 트레이딩(Algorithmic Trading)과 투자 모델, 데이터 분석을 하나씩,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감이나 직관은 배제하고 논리로만 시장을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수학 공식이나 모델만 믿기보다는, 거시경제 흐름도 함께 보면서 전략을 짜기도 했습니다. 저금리든 고금리든 어떤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조합을 만들고 싶었죠.”

과거에 잘 작동한 전략이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에서, 그는 “왜 이 전략이 좋은지”,
“어떤 조건에서 유효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모델은
과감히 배제해 나갔다

대회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세운 기준은, 눈앞의 수치를 얼마나 정교하게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고 한다.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IS(In Sample)라 불리는 과거 데이터의 성능 지표뿐이지만, 그는 그 숫자에 쉽게 안주하는 접근을 끝까지 경계했다. 과거에 잘 작동한 전략이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에서, 그는 “왜 이 전략이 좋은지”, “어떤 조건에서 유효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모델은 과감히 배제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가 특히 골몰한 것은 금융적 의미를 갖춘 설명 가능성이었다. 기술적으로 세련된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모델이 실제 시장에서 어떤 경제적 논리에 기대어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데이터 속 수학적 패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과 거시경제라는 환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연결해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대회에 제출된 모델이 26만 개가 넘는다고 들었어요. 그 안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특정 상황에서만 잘 작동하는 전략으로는 부족한 거죠. 결국 저금리일 때도, 고금리일 때도 모두 버틸 수 있는 전략 풀을 만들어 두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장 환경이 바뀌더라도 전체 구조가 흔들리지 않는 쪽을 택할 수 있으려면요.”
결국 시장 환경이 바뀌더라도 논리가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데이터의 수치적 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의 금융적 합당성을 끈질기게 따져 묻는 태도야말로 이번 우승을 떠받친 핵심 경쟁력이었던 것이다.

경영으로 묻고, 공학으로 풀다

이번 도전의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김민겸 학생에게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퀀트라는 분야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였다. 입문자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자료가 많지 않아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고, 방대한 데이터와 수많은 연산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구조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기초 강의를 참고삼아 기본기를 차근차근 쌓는 한편,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일수록 조급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스스로 다잡아가기도 했다. 단기적인 결과에 매몰되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판단에서다. 그렇게, 타인의 속도와 성과를 기준 삼기보다, 자신의 과정과 리듬을 지키며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긴 호흡의 해법이 됐다.
이러한 태도는 산업공학과와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며 길러온 융합적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 산업공학을 통해 시계열 분석과 확률 이론 등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론을 익혔다면, 경영학 수업을 통해서는 금융 시장을 해석하는 통찰과 도메인 지식을 쌓아왔다. 실제로 김민겸 학생은 “경영학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큰 그림을 그린 뒤, 산업공학으로 그 해법을 구현해 나갔다”면서 “전공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기초를 중시하는 교육 경험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보다 커뮤니케이터 될 것”

군 시절 우연히 접한 주식시장은, 탐색과 사색의 시간을 거쳐 어느새 김민겸 학생의 방향이 됐다. 그리고 그는 이미 ‘월드퀀트 본사 인턴십’이라는 또 하나의 기회를 손에 쥐고 있다. 대회 참가자 자격으로는 접할 수 없었던 데이터와 운용 전략을 직접 보고 다루며,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자본을 어떻게 사고하고 시스템화하는지를 몸으로 익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특히 포트폴리오 매니저들과의 교류를 통해 헤지펀드가 리스크를 관리하고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생각에 설렘은 커져만 간다.
“이번 기회를 ‘배움의 폭을 넓히는 현장 수업’으로 여기고 있어요. 제 삶이 ‘퀀트’에 있다 해도 ‘전문가’보다는 퀀트를 설명하고 연결해 주는 ‘연결자’로 섰으면 하거든요. 낯설고 어려운 분야로 알려졌지만, 그런 만큼 비전공자나 일반 투자자,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요즘 책 출판과 강의 준비로 분주한 것도, 결국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에요.”
성과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잃지 않는 시간’임을 알고 있는 그는, 오늘도 데이터 너머의 의미를 자신만의 리듬으로 천천히 짚어가고 있었다.

국제 퀀트 리서치 대회(IQC, International Quant Championship)

글로벌 자산운용사 월드퀀트(WorldQuant)가 주최하는 팀 기반의 국제 퀀트 경연 대회다. 총 3개 라운드로 구성되며, 2025년에는 3월 18일부터 9월까지 약 6개월간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월드퀀트의 연구·시뮬레이션 플랫폼인 브레인(BRAIN)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시장 데이터와 연산자를 활용해 주식 포지션을 예측하는 수학적 모델, 이른바 ‘알파(Alpha)’를 설계하고 성과를 경쟁한다. 단순한 수익률 비교를 넘어, 데이터 해석 능력과 모델의 안정성, 일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