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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Lab Animals
: 인실리코

2025년 4월, 미국 FDA가 ‘동물실험 축소 로드맵’을 발표하며 신약개발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오가노이드와 인실리코(In silico) 기술을 통해 동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약물의 효능과 안전성을 예측하겠다는 것이다. 윤리적이면서도 과학적 정확성을 높이는 이 변화는 제약산업을 ‘Beyond Lab Animals(동물실험 너머)’의 시대로 이끌고 있다.

  • Words. 박대의 국가독성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변화의 신호탄: FDA의 공격적인 선언

2025년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동물 사용 축소를 위한 로드맵(Roadmap to Reducing Animal Testing in Preclinical Safety Studies)을 발표했다. 이번 로드맵은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 FDA에서 발표되는 여느 문서와는 달리 동물대체 관련해서 상당히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로드맵의 핵심은 비임상시험(preclinical safety test: 동물을 이용한 시험)에 오가노이드(Organoid) 및 인실리코 기법 등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를 넘어 신약개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는 오가노이드나 인공장기 같은 생체 모사 모델을 제작해 신약의 약효를 검증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In silico라 불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먼저 오가노이드 기술의 현황을 간략히 살펴본 후, 인실리코의 개념과 현황, 그리고 두 기술의 통합적 활용 방안을 다루며 신약개발 관점에서의 ‘Beyond Lab Animals’의 현실적 가능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오가노이드: 인체를 모사하는 미니 장기

오가노이드 기술은 인체의 복잡한 조직 환경을 모사하고, 전통적인 이차원 배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오가노이드 기술은 특정 장기의 기능을 모사하는 데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간, 신장, 뇌, 장 오가노이드 모델이 다양한 연구에서 개발되어 질병 연구뿐만 아니라 신약개발을 위한 약물 효능 및 독성 평가 등 인체를 모사하는 분야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미 오가노이드 기반 약물 시험법이 도입되고 있으며, 바이오프린팅을 이용한 오가노이드 생성 기술도 선을 보이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동물이 아닌 인간 유래 세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종(種) 간 차이로 인한 오류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세생리시스템(MPS)

그러나 현재 오가노이드 배양 기술은 단일 장기 모델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장기 간 상호작용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간 오가노이드는 간에서의 약물 대사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약물이 신장이나 심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동시에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MPS 또는 오간온어칩(Organ-on-a-chip)을 통해 간, 폐, 심장 등 주요 장기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체 반응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MPS 또한 인체 장기의 기능적 요소를 반영하여 약물 반응과 독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오가노이드와 오간온어칩 기술은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여전히 비용과 복잡성, 그리고 전신 반응 재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중 장기를 연결하여 전신적 약물 대사 과정을 재현하는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오가노이드 기술과 함께 효율적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또 다른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딥러닝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성능이 개선되고 있는 인실리코 방법론이다.

인실리코, 디지털 신약개발

‘인실리코(In silico)’라는 용어는 1990년대 초반 등장했다. ‘In vitro(시험관 내에서)’, ‘In vivo(생체 내에서)’와 같은 전통적인 생물학 용어에서 영감을 받아, 실리콘 칩으로 만들어진 컴퓨터 내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을 뜻하는 말로 만들어졌다. 단순한 언어유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용어의 탄생은 생명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인실리코 기법은 질병의 타깃 예측, 약물의 디자인, 약물의 유효성 및 독성, 약물의 용량을 예측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생물학적 현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모델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파폴드(AlphaFold)’는 지구상의 모든 구조생물학자들의 노력이 담긴 단백질 구조 디지털 데이터(Protein Data Bank)를 모델링했다. 이를 통해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하면 단백질 분자 구조를 쉽게 모델링할 수 있다. 또한 ESM과 같은 단백질 파운데이션 모델을 통해 단백질 서열들에 대한 특징을 쉽게 임베딩(embedding)한 후 생물학적 현상을 예측하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여 모델의 성능을 높이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FDA가 대표적으로 제시한 인실리코 기술들로는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배출을 예측하는 PBPK(Physiologically Based Pharmacokinetic) 모델, 면역독성 등을 예측하는 딥러닝 기술, 독성의 경로(pathway)를 예측하는 정량적 시스템 약리학(Quantitative Systems Pharmacology), 그리고 약물의 오프 타깃(off target) 효과 예측 기술 등이 있다.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약물의 효능과 안전성을 미리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실리코는 ‘Beyond Lab Animals’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핵심 기술이다.

임상시험에서의 성공적인 Applications

신약 개발은 전통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되는 작업이다. 평균적으로 하나의 신약이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조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세계의 많은 연구팀들이 인실리코 방법을 활용해 기존 약물 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을 만한 것들을 빠르게 스크리닝했다. MIT와 하버드 대학의 공동 연구팀은 수천 개의 기존 약물 분자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하여 몇 주 만에 유망한 후보 물질들을 선별해냈다. 하지만 약물 개발단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흥미롭게도,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과 2상에서는 인실리코 기법의 적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들은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기간을 줄이는 데 FDA에서 제시한 인실리코 방법들이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물의 치료 유효농도 설정, 항체 약물의 면역독성 예측, 임상 대상자의 선정, 심지어 신약의 시장 영향력까지 예측하는 모델들이 계속해서 개발, 적용되고 있다.

비임상시험의 현실: 1%의 벽

그러나, 미국 FDA에 등록된 비임상시험 중 FDA가 제시한 인실리코 기법이 적용된 건수는 지난 10년(2013~2023년) 동안 전체 367건 중 1%도 되지 않는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동물이 주로 사용되는 단계가 바로 비임상시험 영역임을 고려하면, 동물실험 대체라는 측면에서 인실리코의 활용은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왜 비임상시험에서는 인실리코 기법의 도입이 이토록 지지부진했을까? 이유는 기술의 효과 부족이 아니었다. 첫째, 인실리코 R&D 비용보다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 둘째, 규제기관에서 인실리코 예측 결과에 대한 동물 검증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로 예측을 해도 결국 동물실험으로 확인해야 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동물실험만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2025년 FDA의 로드맵이 혁명적인 이유다. 검증된 인실리코 기법 사용 시 동물 검증을 면제한다는 것은, 제약업계에 강력한 경제적 동기를 제공하는 동시에 동물실험 감소를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이다.

통합적 접근: 동물실험과의 시너지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보인 약물 중 임상시험 단계에서 실패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는 통계는, 동물실험의 과학적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쥐나 토끼가 아닌 인간의 생리학적 특성을 직접 모델링하고 검증하는 통합적 접근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동물실험과 함께 인실리코 기법과 오가노이드 같은 생체 모사 모델의 결합은 각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한다. 인실리코는 속도와 비용 효율성을 제공하고, 오가노이드는 실제 인체 조직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이 접근법은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종(種) 간 차이로 인한 예측 오류를 근본적으로 줄인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증명된 수치는 없다. FDA 로드맵의 신호탄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계속 보고될 것이다. FDA의 새로운 방침은 이러한 통합적 접근을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이는 실험동물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검증된 인실리코 기법 사용 시
동물 검증을 면제한다는 것은, 제약업계에 강력한
경제적 동기를
제공하는 동시에
동물실험 감소를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이다.

상호보완적 발전의 필요성

그러나 인실리코나 오가노이드 기술만으로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인실리코 모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만 작동하며, 알려지지 않은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나 예측하지 못한 상호작용은 시뮬레이션에 반영될 수 없다. 오가노이드는 단일 장기 모델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장기 간 상호작용을 반영하기 어렵고, 오간온어칩은 비용과 복잡성이 높다. 이것이 바로 여러 대체 기술들이 함께 통합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Beyond Lab Animals는 단일 기술의 우월성이 아니라, 여러 대체 기술들의 시너지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인실리코로 가능성을 탐색하고, 인간 유래 생체 모사 모델로 검증하는 방식은 동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정확도를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다. 또한 인실리코 모델에서는 학습하는 데이터의 질도 중요하다. 편향되거나 불완전한 데이터로 학습된 모델은 잘못된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

규제와 검증: 국제 조화

FDA의 이러한 방침 변화는 단순히 미국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인실리코 및 오가노이드 방법의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동물실험 대체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미국 FDA는 비임상시험에서 동물 사용을 줄이기 위해 검증된 인체세포 모델 및 인실리코 기술들을 신약평가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관련 규제기관을 중심으로 이러한 국제적인 움직임에 함께하고 있다. 규제기관에서는 인실리코 기법과 오가노이드 기술에 대한 인정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제약업계가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신약개발에서는 설명가능한 AI가 어느 분야보다더 중요하기 때문에, 모델이 왜 그러한 예측을 내놓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Beyond Lab Animals를 향하여

딥러닝을 위시한 인실리코 방법론과 오가노이드 기술은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의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비록 현재까지 비임상시험에서의 적용률은 낮지만, 미국 FDA의 로드맵 발표는 향후 급격한 변화를 예고한다. 동물 검증 요구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제약업계에 강력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될 것이며, 이는 대체 기술들의 확산을 크게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물실험을 줄이고,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을 개발하는 것. 인실리코와 오가노이드가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더 윤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정확하며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인 신약 개발의 실현이 될 것이다. 현재는 오가노이드, 장기유사칩, 그리고 인실리코 기술들이 ‘동물실험 감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Beyond Lab Animals’이라는 전환의 핵심에는 FDA가 제시한 기술 보다 더 진보된 인체 모사 기술들이 필요할 것이다. UNIST 구성원들 중에서 ‘Beyond Lab Animals’ 기술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