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단어는 다소 차가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술 덕분에 삶은 더욱 윤택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연구자들이 기술의 영향과 의미를 심도 있게 성찰하는 ‘반성’을 거듭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AI에 잠식될까’, ‘그 결과물에 매몰될까’ 우려가 커지는 최근,
최전선의 연구자들은 과연 어떤 성찰을 이어가고 있을까?
삶을 이롭게 할 ‘가치 있는 경험’에 대해 항상 고민해 왔다는 공태식 교수(컴퓨터공학과 & 인공지능대학원)에게 그 성찰을 청해 들었다.
‘코로나19’ 발발을 기점으로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디지털 기술은 어느새 ‘인공지능(AI)’으로 수렴됐다. 이후 AI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영상 분석 기술로 암이나 기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치료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였고, 금융 환경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고객이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제조업에서는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작업의 효율성을 개선했으며, 교육 현장에서는 개인 맞춤형 학습과 성향별 콘텐츠를 제공한다. AI가 다양한 산업에 실질적인 가치를 더하며 우리 일상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은 결과 우리는 기술의 혜택이 가져다 줄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이 AI로 인해 인간미와 감정적 교류가 상실될 것이라는 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지난 8월 임용, 유비쿼터스 인공지능 연구실 운영을 맡고 있는 공태식 교수가 AI의 기술적 혁신과 윤리적 책임이 동시에 고려되는 ‘인간 중심의’ 접근을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석사 및 박사 시절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을 연구한 공 교수는 현재 유비쿼터스와, 보다 효율적이고 맞춤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AI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그 범위를 ‘AI 애플리케이션’, ‘AI 개인화’, ‘효율적인 AI 시스템’ 등 다양한 온디바이스 AI로 소개했는데, 그렇다 보니 자신의 연구는 사용자, 결국 ‘인간 중심’을 지향하게 된다는 게 공 교수의 설명이다. 소위 ‘디지털 원주민’1으로서 그동안 목도했던 스마트 기기의 발전은 그에게 “기술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발전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명제에 확신을 줬던 바다. 특히 아이폰의 출시로 무선 기기의 개념이 진화했던 2007년과, 모바일 기기가 사물인터넷(IoT)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9년의 상황을 반추하며 AI의 본격적인 등장을 되짚어 줬다.
“대학에 입학할 즈음이었어요. 당시 하드웨어 중심의 설계와 소프트웨어 시스템, 알고리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던 것 같습니다. 졸업할 무렵에는 인공지능이 급부상하더니, 대학원에 입학했던 2016년 3월에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세상이 떠들썩했고요. AI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라 저도 자연스럽게 여러 주제를 탐구하게 됐어요. 그렇게 AI와 저의 인연이 시작된 겁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09년을 기점으로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한’ 기기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후 유비쿼터스·사물인터넷·자율주행 등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는 사람과 기기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연구들이 활발해졌음을 공 교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딥러닝과 알파고 같은 혁신 기술을 통해 더욱 주목받게 된 AI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주제로 확장됐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삶을 변화시킬 주요한 도구로 작용하는 만큼 하나의 기술로 접근하기보다는 책임감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졌다는 게 공 교수의 부연이다.
“과학과 기술의 목적은 결국 ‘사람’과 ‘보다 나은 삶’이에요. ‘신속·정확하고 오차 없는’ 특성 때문에 가끔 ‘유연하고 심정적인’ 사람이 소외되는 것 같아도 우리 삶을 위한다는 점에서는 흔들림이 없죠. 그리고 이때 연구자들의 고민과 반성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문명의 이기’라는 과학의 본질과 ‘인간성 파괴’라는 기술의 현상 사이 간극이 없기를 그 누구보다 연구자들이 원하고, 또 설명도 해야 하니까요.”
모든 사안에는 늘 양면이 존재하거니와, Al처럼 혁신적이면서도 강력한 기술일수록 그 장점과 단점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AI는 분명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로서 긍정적이지만, ‘개인 정보 보호의 문제’나 ‘일자리 문제’, 기타 ‘윤리적 문제’ 앞에서는 역시나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기를 지나 AI의 편리함과 혁신을 누리는 지금, 우리는 윤리적 딜레마와 책임을 직면해 있음을 인식하고 ‘AI와의 공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공 교수의 조언은 ‘지식’과 ‘경험’을 분리하는 하는 것이다.
“얼핏, AI 덕분에 우리는 빠르고 오차 없는 정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AI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가령 정보나 지식을 얻는 데에는 빠르고 정확할지 몰라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은 놓칠 수밖에 없는 거죠.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실수하며 배우는 것들이야말로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면 말입니다.”
AI 기술을 마주함에 있어 공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지식인지 경험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지식이 필요하면 ‘똑똑하게’ 사용하되, 경험 또한 놓치지 않고 싶다면 그 부분을 충족할 어떤 고민이나 활동, 토론 등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다시 말해, AI의 결과값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을 통해 ‘수용과 거부’ 혹은 ‘수정과 보완’에 대한 주관적 결정에 따라 행동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공 교수는 모 작가의 책을 인용, AI 대전환 시대에 필요한 비판적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억압도, 저항도 없이 스마트한 이 지배 체계에서 내 생각·느낌·감정을 말하지 않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다.”2 라는 문장을 건네는 공 교수의 표정으로 그 성찰의 깊이가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