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이 없었어도, 획기적인 만남이 떠오르지 않아도 사실은 모든 순간이 특별했고 모든 만남이 획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UNIST의 새 얼굴, 박종래 총장을 마주하니 확실히 알겠다.
시간은 성실하게 속으로 쌓여 그 사람을 만든다.
시간이 우리 삶에 쌓은 것은 비단 내 삶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 우리의 선택,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까지 포괄하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간다. 따라서 그것은 내 주머니에 머물고 마는 ‘소유’가 아니며,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명예’도 아니다. 다만 ‘함께’일 때 커지는 ‘존재감’이며, ‘연대’될 때 넓어지는 ‘품’에 가깝다.
부임한 지 한 달이 된 박종래 총장은 한참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대학기관의 수장으로서 UNIST의 공간 곳곳과, 함께 할 UNIST人들을 마음에 담으며 ‘낯설지만 설레는’, 그 묵직한 감정을 가만히 톺아보는 중이다.
“패스파인더(pathfind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인도해 주는 길잡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 등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는 자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죠. 그간 UNIST는 충분히 그 이름에 걸맞게 왔어요.
다만 제 개인적인 경험이 UNIST를 만나, 과연 어떤 변주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큰 책무로 다가옵니다.”
박 총장은 UNIST의 역사를 돌아봤다고 한다.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세계적 과학기술 선도대학’을 표방하며 지난 2009년 개교했으며, 국내 상위 5%의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었던 당해 입학생들로 인해 UNIST는 단숨에 국내 최고 대학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했다.
국립대 법인으로 출발했던 UNIST가 과학기술원으로 새롭게 출범한 것은 지난 2015년의 일이었다. 당시 박 총장은 지인을 통해 산학협력 기반으로 다져진 UNIST의 연구 환경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을 접했다고 한다.
“울산에 이런 대학이 있구나 했습니다. 조무제 초대 총장님과 역대 총장들께서 교수진의 질을 높이고, 연구 환경을 최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인상 깊었어요. 게다가 연구지원본부(UCRF)가 첨단 기기와 설비는 물론,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죠. 교수진, 연구 환경, 전문 인력 등의 인프라가 환상적인 수준이었어요. 이 모든 것이 UNIST人의 노력과 열정과 만나 개교 이래 15년 만인 지난해 ‘THE 신흥대학평가’ 국내 1위, 세계 10위라는 결실을 이뤄낸 것입니다.”
박 총장은 이러한 성과가 UNIST의 모든 구성원의 노력과 열정 덕분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4년간의 임기를 엄숙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총장에 따르면 울산은 다른 지역보다 산업과의 상호 교류 및 협력이 용이하고, 이러한 조건은 지역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가능하게 한다. 다만 현재 R&D 기능은 수도권으로 이동, 울산은 주로 생산 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고.
“기술 스케일업 전주기 맞춤형 융복합 연구 플랫폼을 통해 UNIST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울산의 산업적 배경을 활용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에요. 이를 통해 지역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촉진하며, 궁극적으로 울산을 글로벌 첨단산업의 허브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박 총장은 UNIST의 비전을 “창의력과 통찰적 연결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 즉 ‘Pioneers’ 양성으로 정했다. 이러한 인재상은 울산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과 개척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예를 들면 정주영 회장 등 선구적 인물들이 이끌었던 울산의 전통이 UNIST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려는 것이다.
박 총장은 이를 위해 개인과 기관의 연결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또한 이를 국제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글로벌 협력을 촉진하면서도 상아탑같은 개념의 대학에서 탈피, UNIST를 누구나 와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 조직으로 변모시킬 예정이다.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드는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UNIST도 현재 이러한 변화의 단계에 있다고 봐요. 결국 어떤 꿈을 꾸고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해 갈지, 지금이야말로 UNIST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할 시기입니다.”
박 총장은 “총장직에 지원하면서 30년, 50년 후의 UNIST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대학으로 자리 잡을지를 많이 고민했다.”라며, 마음속에 품어왔던 UNIST의 청사진을 꺼냈다.
“먼저 앞으로 30년, 넉넉잡고 50년이면 UNIST도 울산의 ‘스탠포드’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 중점’이라는 수식은 지키되, 지식의 경계를 넓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이끌어 갈 것입니다. 아울러 그 영향은 일차적으로 ‘나’를 성장시키겠지만 내 주변과 사회, 더 나아가 세계와 연결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박 총장은 UNIST의 성과와 교수진의 역량, 연구 기반에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지금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경주마’ 같은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총장은 일 년에 두 번, 봄에는 UNIST 구성원 중심의 ‘체육행사’를 진행하고 가을이면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축제의 자리’를 만들 생각이다.
이렇듯 Pioneers를 향한 UNIST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구성원 모두의 하나같은 마음으로, 지역을 품고 세계로 뻗어갈 UNIST와 박종래 총장의 멋진 항해를 응원해 본다.
지난 7월 8일 부임한 박종래 UNIST 제5대 총장은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기반소위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CARBON 편집위원과 아시아 탄소학회 회장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세계적인 재료연구 분야의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