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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반도체 개발의
밑바탕을 마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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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과 신현석 교수팀

반도체 성능을 결정하는 미세소자의 집적도를 높이려는 도전이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소형화와 집적도가 한계점에 도달한 3차원 소재 대신 2차원 소재로 반도체를 개발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3차원 기판과 2차원 소재 사이에 들어가는 고품질의 2차원 절연체를 원하는 두께로 생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화학과 신현석 교수는 유일한 2차원 절연체인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단결정 박막 형태로 여러 층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의 기술적 밑바탕을 마련했다.
왼쪽부터 김형준(박사과정), 신현석 교수, 김민수(박사과정)
실리콘을 대체할 2차원 소재의 대두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마이크로칩의 집적도가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인텔의 설립자 고든 무어의 예측은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져 이른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라고까지 불렸으며, 이는 반도체 업계의 급격한 기술적 성장을 대변해 왔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 개발 현황을 살펴보면 무어의 법칙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반도체 칩 하나에는 수십억 개의 미세소자(트랜지스터)가 들어 있다.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려면 이 미세소자를 더 작고 얇게 만든 뒤 더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미세소자의 재료로 쓰이는 3차원 소재 실리콘은 작게 만들면 만들수록 전류 누설과 발열로 인해 트랜지스터가 손상되는 단채널 효과, 전하 산란 등 반도체 성능과 수명을 저하시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한다. 실리콘의 표면을 가공하면서 생기는 표면의 불완전한 화학 결합인 댕글링 본드(Dangling Bond)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업계에서는 3차원 소재인 실리콘 대신 이황화몰리브덴(MoS2)과 같은 2차원 소재를 미세소자로 활용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차원 소재는 구성 원자들이 평면 형태로 연결돼 있어 3차원 소재를 작게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단채널 효과와 전하 산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덕분에 2차원 소재를 사용하면 미세소자 집적도와 반도체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2차원 절연체 상용화 앞당긴 세계 최초의 기술

실리콘 대신 2차원 소재를 미세소자로 활용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미세소자를 올릴 기판, 즉 웨이퍼(Wafer)도 실리콘으로 만들어지기에 2차원 소재와 웨이퍼를 절연체로 분리시켜야 2차원 소재 반도체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때 절연체 또한 2차원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 3차원 소재로 절연체를 만들면 댕글링 본드가 생기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육방정계 질화붕소(hBN)는 전하 트랩, 전하 산란 등의 반도체 기능 저하 문제를 막을 수 있는 물질로,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2차원 절연체 소재다. 분자 구조가 그래핀(Graphene)과 유사하지만 하얀색을 띠기에 ‘화이트 그래핀’이라 불리기도 한다.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2차원 절연체로 활용하려면 결정 전체가 일정한 결정 축을 따라 규칙적으로 생성되는 단결정(Single Crystal) 형태로 합성해야 한다. 상용화가 가능한 크기의 육방정계 질화붕소 단결정은 기존에도 합성한 사례가 있지만, 모두 원자 한 층 두께였기에 절연체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화학과 신현석 교수팀이 이번에 개발한 육방정계 질화붕소 합성 기술은 단결정 형태의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니켈 기판 위에 원료의 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며 원하는 두께의 단결정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을 만들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합성 기술이다. 이번 연구 성과를 다룬 논문 「Epitaxial single-crystal hexagonal boron nitride multi-layers on Ni(111)」은 지난 6월 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꾸준한 도전으로 반도체 혁신에 일조하다

신현석 교수팀이 개발한 단결정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 다층 합성 기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신 교수는 2012년부터 육방정계 질화붕소의 합성과 응용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2020년에는 질화붕소의 일종인 비정질 질화붕소가 고집적 반도체의 신호 전달 지연을 막는 초저유전물질임을 밝혀내 『네이처』에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비정질 질화붕소는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연구하던 중 2018년에 발견했는데요. 유전상수가 2.0 이하로 매우 낮아 반도체 소형화 시 전기적 간섭을 차단하는 유전체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2년여의 연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이후 여러 반도체사에서 비정질 질화붕소 상용화에 대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개발한 단결정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 다층 합성 기술도 반도체 기술 향상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결정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을 여러 겹으로 합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하나 더 개발돼야 한다. 니켈 기판 위에 합성한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을 손상 없이 웨이퍼 위에 전사(轉寫)하는 기술이 바로 그것. 신 교수팀은 이를 위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 교수는 “이 기술이 개발되면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 전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2차원 소재의 전사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팀은 앞으로도 육방정계 질화붕소와 관련된 기초 연구와 더불어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활용할 수 있는 응용 화학 분야의 연구까지 폭넓게 펼쳐 나갈 계획이다. 이들의 노력이 반도체의 혁신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해 본다.

육방정계 질화붕소로 여는 혁신적 미래 MINI INTERVIEW
  • 신현석 화학과 교수

  • Q. 육방정계 질화붕소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계기가 궁금합니다. 2008년 7월 UNIST 부임 후 여러 교과목을 만들고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다가 2차원 소재 연구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 가장 큰 이슈였던 그래핀에 대해 연구했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분들이 연구를 하고 계셔서, 보다 도전적인 연구를 해 보고자 2012년부터 육방정계 질화붕소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Q. 연구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연구 중점사항은 무엇인가요? 우리 연구팀원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남을 따라가는 연구를 하지 말자’인데요. 다른 연구자들이 많이 매달리는 분야보다는 세상을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끝까지 도전해서 성과를 만들자는 뜻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2020년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비정질 질화붕소와 이번에 발표한 단결정 육방정계 질화붕소 박막 다층 합성 기술도 모두 이러한 도전적 연구로 이뤄낸 값진 성과죠.
    Q.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앞으로의 연구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비싼 니켈 기판 대신 값싼 기판 위에 단결정 육방정계 질화붕소 다층 박막을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아울러 기판에 합성된 박막을 웨이퍼로 손상 없이 전사시키는 기술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에는 대학 내 벤처기업 ‘넥스티리얼즈’를 설립해서 수소연료전지 전해질막, 차세대2차전지 전극소재, 양자 광원 등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응용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반도체 업계와 다양한 첨단 산업 분야에 혁신적인 영향력을 전할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연구에 매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