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RF(UNIST Central Research Facilities)는 구성원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첨단 융합 연구에 필요한 고가의 첨단장비를 설치해 구성원이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고, 이런 장비를 관리할 전문기술인력을 배치한 것. 최고의 장비와 기술진이 모인 UCRF에서는 시험, 분석, 공정 등의 서비스를 지원했고, 그 영역이 지역의 산업체와 연구소, 대학까지 넓어졌다.
현재 UCRF는 300종 이상의 연구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분야별로는 나노 공정을 위한 ‘나노소자공정실’, 물질 특성 분석을 위한 ‘기기분석실’, 각종 실험장치 제작과 정밀 시편 가공을 할 수 있는 ‘기기가공실’, 환경 중 극미량 오염물질을 분석하는 ‘환경분석실’, 살아있는 세포와 개체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광학바이오메드이미징실’, 바이오융합기술을 이용하여 생체효능검증연구를 할 수 있는 ‘생체효능검증실’, 방사성물질 및 장비와 방사선 작업 종사자를 안전하게 관리·감독하는 ‘방사선안전관리실’로 구성돼 있다. UCRF 내 공용장비는 장비 자율사용제도에 따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UCRF에서는 기기사용법과 분석 방법에 관한 교육과 세미나를 지속하고 있다.
UCRF 내부에 설치된 UNFC(UNIST Nano Fabrication Cleanroom)는 2009년 주로 금속 판(Metal Pad)을 제작하는 실험실 규모의 LAB(Laboratory) 형태로 출발했다. 현재는 메모리(DRAM, 낸드 플래시), 비메모리 시스템을 개발·연구하는 FAB(Fabrication)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설계와 개발, 제조 분야로 나뉜다. 설계와 개발을 주로 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은 애플(Apple), 퀄컴(Qualcomm), 엔비디아(NVIDIA), 에이엠디(AMD), 리얼텍(REALTEK) 등이 대표적이다. 제조 분야의 기업은 웨이퍼 칩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Foundry)로 TSMC, SMIC. UMC 등이 대표 기업으로 손꼽힌다.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두 가능한 종합반도체기업(IDM)도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intel)이 여기에 속한다.
설계와 개발 그리고 제조를 나누는 기준은 FAB(Fabrication), 즉 파운드리의 유무이다. FAB은 미세한 공정기술이 요구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유지·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IDM 기업들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FAB을 위탁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이들을 FAB-light 기업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에서 FAB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위탁생산’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기존 산업에서의 원-하청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반도체 관련 탁월한 신기술을 개발해도 파운드리 단계에서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협업의 영역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러한 FAB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바로 ‘나노공정’이다. 반도체 칩은 나노미터 단위에서 제조되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클린룸(Cleanroom) 등의 설비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UNIST 나노소자공정센터 역시 이러한 기반 위에 투자와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 운영되는 대형 FAB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해마다 꾸준한 장비 투자와 인력 보강을 통해 2017년에는 1,000㎡ 슈퍼클린룸 형태로 확장·이전하며 150나노미터 낸드플래시 기반 GAA(Gate all around) 소자를 개발하는 데까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UNIST 내부에 반도체 연구인력과 반도체 핵심 소재 부품 개발 플랫폼이 구축된 덕분에 가능했다. 또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과 파일럿 제품 개발 지원 등이 이어지며 연구기관으로서의 인프라가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UNFC는 효율적이고 안전한 운영을 위해 전문인력을 두고 있다. 공정통합(Process integration) 1명, 현상(Lithography) 공정 2명, 에칭(Etching) 공정 2명, 박막(Thinfilm) 공정 4명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FAB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 FAB은 1년 365일 온도, 습도, 먼지 개수가 일정하게 관리돼야 하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쉴 새 없이 공조기가 운영되며 필터 관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UNFC는 많은 연구자가 다양한 목적에 의해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BM(Breakdown maintenance)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문제 발생 시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PM(Preventive maintenance) 활동할 수 있는 유지보수 전문가(매니저)가 센터 내에 상주하고 있다.
UCRF의 장비 자율사용제도는 UNFC에서도 장비 사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매월 진행되는 장비 사용법 교육을 통해 자율 사용자를 육성하고, 일정 수준 이상 실력을 갖춘 사용자들에게 단순 장비 사용법뿐만 아니라 레시피(recipe), 공정 노하우(know-how) 등을 전수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원하는 반도체 소자를 제작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장비 사용법 교육은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 매뉴얼의 일환이기도 하다. UNFC 공정에는 유독 가스, 강한 산 및 염기 용액 등이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항시 존재한다. 장비에 관해 정확히 숙지하는 등 전문성을 갖춘 상태에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사용자의 안전의식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적인 보완 역시 이뤄져야 한다. 이에 방폭 가스 캐비닛, 긴급 환기 시스템, 개인 보호구, 만에 하나 발생한 사고에 대한 대처방안(몸/눈 샤워 시설, 안티 케미컬 크림, 용액 펜스 등 안전 물품)이 촘촘하게 구비돼 있다.
국내 주요 반도체 FAB은 경기, 충청권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UNIST가 위치한 경상권에는 최근에서야 차량용 반도체, 전력 반도체 개발 등 반도체 산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이라 인프라 구축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발맞춰 UNIST 역시 지역거점 공공 FAB으로서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하는 중이다.
반도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적기에 장비가 투자돼야 한다. 또 투자된 장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인력이 꼭 필요하다. UNFC는 이를 위해 매년 10억 원 이상의 지속적인 투자와 FAB 투입비에 비례하는 운영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반도체 소자는 모든 첨단 기술이 집약된 산업이라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한 진보적인 분야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소자의 동작 도식(scheme)이나 사용되는 소재·부품 등은 과거에 검증된 부분을 사용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산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혁신적인 성과를 달성하는 데에는 대형 FAB보다 오히려 연구기관인 UNIST에 설치된 FAB가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실리콘 너머(Beyond Si)’를 목표로 다양한 구조의 소자 제작 연구와 반도체 핵심 소재, 부품 연구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한다.
UNFC는 2009년 설립 이후 매년 크게 성장하고 있다. 다만 대형 연구 FAB과의 경쟁에서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자체적으로도 반도체 관련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대응을 위한 조직력이 비교적 약한 부분이나 운영 인력의 부족 등은 해결할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 인프라와 전문인력 양성 등 UNIST가 가진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경쟁력은 충분히 있다. 더불어 정부 지원을 받는 연구기관이자 지역거점 시설로서 공공성 확대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