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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제조도시의 재도약
피츠버그와 울산

과거 미국의 공업지대였던 중서부와 북동부의 도시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빠르게 변화하는 제조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위축됐고, 일부는 지역 거점 대학과 적극적인 산학협력을 통해 ‘21세기 신산업을 주도하는 미래형 도시’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게 됐다.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피츠버그 대학교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산학협력이 가져올 수 있는 제조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고 울산과 UNIST의 오늘과 내일을 전망해본다.
  • 글. 임성훈 4차산업혁신연구소장 / 산업공학과 교수
Pittsburgh Ulsan
피츠버그, 쇠퇴한 철강산업 도시에서
성공한 미래형 도시로

러스트 벨트(Rust Belt)란 미국의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펜실베이니아주, 미시간주, 오하이오주, 일리노이주 등)의 과거 공업지대를 의미하는 표현으로서,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철강산업의 중심지인 피츠버그 등을 포함한다. 1950년대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며, 미국 내 50% 이상의 생산 및 고용을 창출하였다. 특히 그중 피츠버그는 위치적 이점과 풍부한 석탄 매장량을 바탕으로 미국 전체 철강 생산량의 60%를 담당하던 철강산업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Rust”란 단어의 의미에서 추측이 가능하듯 피츠버그를 포함한 러스트 벨트는 1970년대 이후에는 제조기술 경쟁력 하락 및 생산성 하락 등의 이유로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의 후발 공업국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후, 철강산업을 포함한 제조업의 규모가 크게 위축되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피츠버그의 제철소 중 75%는 폐업을 하였으며, 35만 명 이상의 근로자가 해고되었다. 결국 러스트 벨트의 대표적 도시인 디트로이트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970년대부터 서서히 쇠락하면서 결국 2013년 파산하기에 이른다. 반면, 피츠버그는 과거의 위기를 극복하고 IT산업과 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미래형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2009년 G20 세계정상회의가 피츠버그에서 개최되었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폐회사에서 “피츠버그는 쇠퇴한 철강산업 도시가 아닌, 21세기 신산업을 주도하는 성공한 미래형 도시”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피츠버그는 1,600개 이상의 IT 및 바이오 관련 첨단 기술 기업들이 존재하며, 벤처 투자 유치 성공 사례 미국 내 10위, 미국 내 살고 싶은 도시 5위에 선정되는 등, 미래형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피츠버그의 이러한 성공적인 변화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로봇공학 분야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인 카네기 멜런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와 의료 및 바이오 분야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인 피츠버그 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내 교육기관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 대학들은 주 정부와 지역의 벤처기업들과 협력하여 첨단기술센터를 설립하고 IT와 바이오 분야의 기술 개발에 앞장섰으며, 이노베이션 웍스(Innovation Works)라는 벤처캐피털을 통해 창업 지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연구개발의 산업화 노력을 통해 현재 피츠버그에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애플(Apple), 구글(Google), 인텔(Intel), 오라클(Oracle) 등의 지사와 연구소가 존재하고, 카네기 멜런 대학교 및 피츠버그 대학교와 활발한 산학협력을 진행 중에 있으며, 이러한 지역 내 기업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의 많은 수는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피츠버그 대학교 출신이다. 이러한 피츠버그 지역 내의 활발한 산학협력을 통해 학교는 회사에 기술력을 제공하고, 회사는 산학협력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의 우수한 졸업생을 회사에 채용하는 과정을 통해 선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피츠버그 내의 학교와 회사가 모두 발전하게 되었고, 피츠버그의 IT산업 및 바이오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으며, 피츠버그는 러스트 벨트에서 브레인 벨트(Brain Belt)로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

  • <그림 1. 카네기 멜런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
  • <그림 2. 피츠버그 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
Pittsburgh Brain Belt
울산, 전통적인 공업도시에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제조의 대표도시로 거듭나길

울산광역시는 대한민국 최대의 공업도시다.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산업,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조선업 및 석유화학산업(SK에너지, SK루브리컨츠, S-OIL 등)이 울산의 3대 산업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항만을 포함한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선택이 되었고, 그 이후로 자동차, 중공업, 석유화학 관련 국내외 대기업들의 공장이 울산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덕분에 울산은 전국 1위의 GRDP,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재정자립도 1위 등 현재와 같은 대한민국 최대의 공업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의 피츠버그처럼 울산도 2010년대에 들어 3대 대표적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이 중국 등의 후발주자들의 가격경쟁력에 밀려 불황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울산의 지역경제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1962년부터 가파르게 늘어나던 인구도 서서히 증가세가 둔화되었으며, 2015년을 정점으로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피츠버그와 마찬가지로 울산 역시 최근 들어 전통적인 공업도시를 스마트 산업도시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다. 노력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지역 내 교육기관과 기업 간의 산학협력이 있다. 이러한 산학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울산 내 중견/중소 협력업체와도 함께 산학협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울산의 3대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산업은 중견/중소 제조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자동차 부품산업의 경우 자동차 완성차 업체와 직접 거래하고 있는 1차 협력업체 824개사 중, 대기업은 32.6%(269개사)인 반면 중견/중소기업은 67.4%(555개사)를 차지하고 있다(2019년 기준). 또한 중견/중소기업의 비율은 2차 협력업체,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최근 울산에서의 산학협력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지역 내 중견/중소 협력업체 및 스타트업과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0년 9월 울산이 제조혁신 허브도시(AM Hub)에 선정된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AM Hub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로서 전통적인 산업도시를 스마트 산업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해 중견/중소기업을 포함한 제조기업, 연구/교육기관,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협력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이다. AM Hub에는 바스크(스페인), 코펜하겐(덴마크), 이스탄불(터키), 롬바르디아(이탈리아), 미시건과 뉴잉글랜드(미국), 퀸즐랜드(호주), 상파울루(브라질)까지 8개 지역이 속해 있으며, 여기에 울산이 9번째이자 아시아 최초로 등재되었다. 울산은 기존 AM Hub 지역들의 기술력과 경험을 도입할 뿐만 아니라 울산이 산학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스마트 산업도시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과정을 다른 AM Hub 지역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특히 UNIST 4차 산업혁신연구소는 WEF와 함께, AM Hub 지역들과의 협력 강화와 지식 공유를 위해 2021년 11월 울산에서 Global AM Hub Forum을 개최할 예정이다.

  • <그림 3. 인공지능혁신파크 전경>
  • <그림 4. 인공지능혁신파크 비전>
Ulsan AI Innovation Park
지역 거점 대학과 지역사회의 동반성장
적극적인 투자와 교류가 필요하다

피츠버그의 카네기 멜런 대학교, 피츠버그 대학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울산의 산학협력의 중심에는 UNIST가 있다. 특히, UNIST의 인공지능혁신파크(AI Innovation Park) 사업단은 울산을 포함한 동남권 지역에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 기반의 제조 혁신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울산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2021년 1월 시작되었다. 인공지능혁신파크의 핵심 사업은 (1) 산업체 재직자 교육을 통한 인력 양성, (2) AI+X(예: AI+자동차, AI+조선, AI+석유화학) 관련 산학협력 연구, (3) AI 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창업 지원이며, 모두 기업과의 협력을 전제로 진행된다. 특히 인공지능혁신파크의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UNIST 4차 산업혁신연구소가 담당하는 인공지능 노바투스 아카데미아(AI Novatus Academia)가 있다.
인공지능 노바투스 아카데미아는 산업체 재직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2개월간 인공지능 이론 교육을 진행하고, 이어서 3개월 간 제조 현장의 문제를 앞의 2개월 동안 배운 인공지능 이론을 통해 해결하기 위한 선행연구 프로젝트(Project-Based Learning, PBL)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선행연구 프로젝트 중에서 실제 산업현장에 기술적/사업적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되는 프로젝트는 각 프로젝트마다 연간 1억 원 규모(기업부담금 20% 포함)의 예산을 지원하여 AI+X 관련 산학협력 연구로 발전시킨다. 인공지능 노바투스 아카데미아는 2021년 2월 1기가 시작하였고, 지난 7월 시작한 2기는 현재 PBL이 진행 중에 있다. 1기와 2기 모두 울산을 포함한 동남권 지역의 중견, 중소 제조기업 재직자들의 많은 지원이 있었다. 이는 중견, 중소 제조기업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제조혁신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인공지능혁신파크 사업단은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에게 UNIST 산학융합캠퍼스 내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입주 기업들은 UNIST 교수진과의 협력 기회 및 GPU 서버와 같은 전산 인프라 이용 등의 혜택을 제공받고 있다.
피츠버그가 쇠퇴한 철강산업 도시에서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피츠버그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산학협력을 통해 성공한 미래형 도시로 변화했듯이, 울산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UNIST와 지역 제조기업과의 다양한 산학협력을 통해 스마트 제조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머잖아 울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스마트 제조의 대표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