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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움직임 본 따 만든
인공섬모정밀가공과 자연모사의 콜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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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학과
정훈의 교수팀

인류는 끊임없이 더 작고 정밀한 것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나노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융합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접점이 없을 것 같던 영역 사이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정훈의 기계학과 교수팀은 미생물의 섬모에서 나노로봇 개발의 단초를 마련했다. 정밀가공 기술이 자연모사 기술을 만나 이뤄낸 성과다.
초정밀 가공 기술과 생체모방 기술

제 아무리 기계가 정교해져도 아직까진 생명체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역부족이다.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음에도 생물이 오랜 진화과정에서 이뤄온 소재와 기능의 발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우수한 기능들을 모사해 인류의 삶에 유용한 기술로 구현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계공학과 정훈의 교수가 이끄는 ‘멀티스케일 생체모사 및 공정기술 연구실’은 생명체가 가지는 이러한 각종 우수한 기능들을 마이크로 또는 나노 규모의 초정밀 가공기술을 이용해 복합소재부터 산업용 기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기계공학 내에서도 정밀가공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생체모방기술을 중심으로 그 특성과 기능을 기계와 융합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생체모방 감응형 복합소재에서부터, 생체모방 의료기기, 웨어러블 센서, 방오/항균 표면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연구 중입니다.”
정훈의 교수는 초정밀 가공 기술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더 작은 것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생물과 같은 생명체의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생명체들이 어떤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생물의 경우 크기가 수 마이크로미터(㎛)~수십 마이크로미터(㎛) 정도로 매우 작으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자체로 아주 정밀한 로봇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 세포 표면에 돋아난 미세한 털, 섬모 덕분입니다. 섬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체가 가진 우수한 기능들은 독특한 마이크로/나노 구조에서 기인하는데, 이에 대해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기술개발까지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어요. 저희 연구팀 역시 생명체의 독특한 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초정밀 가공 기술과 결합하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가늘고 길게 합성하는 기술 개발

정훈의 교수팀은 지난 7월 나노미터 크기의 자성 입자를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섬모 구조를 가늘고 길게 합성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생명체 구조를 끊임 없이 탐구해 얻은 성과다. ‘플라겔라(Flagella)’ 또는 ‘실리아(Cilia)’라고 불리는 미생물의 섬모는 독특한 구조를 가져, 이 부분에 대한 자체적인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섬모는 직경 대 길이의 비율인 종횡비가 100에 이를 정도로 직경 대비 길이가 아주 길다. 즉 직경은 수십 나노미터(㎚) 수준인데 반해 길이는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달한다.
“직경을 나노미터 단위로 줄이는 기술은 이미 많은 발전을 이뤘어요. 이걸 높고 촘촘하게 만드는 게 문제였죠. 저희도 수년 전부터 시도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혔어요. 한 2년 정도는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것 같아요.”
실마리는 의외의 순간에 풀릴 수 있었다. 연구팀 소속의 강민수 학생이 우연한 기회에 기상(vapor phase)의 나노입자를 특정 공정 조건에 적용했더니 합성이 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섬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백질이 마치 기계 구조물처럼 정교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인공섬모를 만들려면 나노입자를 구조물처럼 세로로 높이 쌓아야 하는데 액상 원료를 틀에 넣어 찍는 등의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더라고요. 연구팀 소속 학생들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며 노력해준 덕분에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합성법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자기력을 이용한 합성법을 적용했다. 섬모 가닥을 돋아나게 하고 싶은 위치에 니켈 금속 조각을 배열한 뒤, 위에서 자성 나노입자를 흩뿌려 차곡차곡 쌓는 방식이다. 니켈 주변에 형성된 강력한 자기력이 자성 나노입자를 잡아당기는 원리다. 정교하게 설계된 자기력 덕분에 나노입자가 알아서 원하는 형태로 조립된다. 이 기술로 실제 지름이 373나노미터(㎚, 10억 분의 1m)인 입자를 최대 54개까지 쌓았다. 종횡비가 50 이상으로, 이제껏 합성된 인공 섬모 중 가장 높다.
“이 기술은 몸 안에 투입 가능한 나노 로봇이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초미세 구동 장치 개발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분야는 초소형 로봇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있거든요. 현재 마이크로 레벨의 로봇으로는 체내 삽입할 수 있는 영역에 제약이 있는데 나노 레벨이 되면 거의 모든 곳에 삽입이 가능해지므로 치료법에도 혁신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만의 경쟁력으로 세계와 경쟁

최근의 연구는 서로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중요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른 연구자들의 결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정훈의 교수 역시 타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우수한 논문을 수시로 살피며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이론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기도 한다.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한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논문에서 장점·단점을 파악하다 보면 자신의 연구방식이나 이론을 한 번 되돌아볼 수도 있게 돼요. 또 열린 마음으로 협업할 수 있는 자세도 갖출 수 있고요.”
연구팀은 최근 국립생태원 소속의 연구팀과 자주 소통하며 협업하고 있다. 지구상엔 수많은 생명체가 있고 그만큼 다양한 기능이 존재하는데 아직 밝혀내지 못한 원리도 많다. 그만큼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의미다.
“생물학에서 연구된 각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 원리 등이 공학을 만나면서 자연모사기술, 생체모방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결과물이 되어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생명체와 흡사한 방식을 모사하는 기술 쪽으로 연구 방향이 흘러갈 거예요. 로봇만 해도 하드웨어를 감싸는 소재가 사람의 피부처럼 부드러운 것을 적용하는 실험이 많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따라서 저희만의 생체모방기술을 만들고 성장시킨다면 더 높은 수준의 기술 개발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연구팀은 또한 제어공학, 전자공학, 생체소재, 의공학 등 다양한 연구팀들과의 협동 연구도 더 활발히 진행하고자 한다. 단순히 소재나 구조를 개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시스템 레벨’에 이르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TV라는 제품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우선 액정이 있어야 하고, 외형을 감싸는 하드커버,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전기구조 등 복합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잖아요. ‘시스템 레벨’이라 함은 인공섬모를 개발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한 의료용 로봇까지 이르는 모든 연구·개발과정을 다 아우를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뜻입니다.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연구팀으로 성장하기 위해 그리고 있는 청사진이에요.”
더불어 정훈의 교수는 연구팀뿐만 아니라 소속된 연구원, 학생 한명 한명이 모두 세계적 수준의 연구팀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자신감과 넓은 시야를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좁은 연구실 안에서 스스로 한계에 직면하지 않도록 해외 학회를 참관하거나 타 대학과 교류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려고 한다.
“우리 학생들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팀들과 경쟁할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저희만의 강점을 가지는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 수준의 연구팀으로 성장하리라 봅니다. 한계를 결정짓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는 연구팀으로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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