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는 7월 19일(현지시각) 최악의 폭염이 닥쳤다. 히스로공항에서는 40.2℃가 관측됐고, 중부 코닝스비에서는 사상 최고인 40.3℃가 기록됐다. 영국 기상청은 올해 폭염이 기후변화 때문에 10배 심해진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았다. 폭염이 단순히 더 뜨거워지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길어져 폭염기간이 5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같은 날 프랑스에서는 64개 지역에서 최고기온 기록이 새로 세워졌다. 파리의 수은주는 40.1℃까지 치솟아 150년 기상관측 사상 역대 3위를 기록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서부 뒤스부르크는 39.3℃로 역대 최고기온을 갈아치웠다. 유럽연합 산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유럽의 올해 여름과 8월 평균기온이 역대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각각 2021년 여름보다 0.4℃, 2018년 8월보다 0.8℃나 높았다.
동아시아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여름을 맞았다. 우리나라에서는 7월 상순 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이 기상관측장비가 전국적으로 대규모 확충된 1973년 이래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일본 도쿄에서는 6월 관측 사상 처음으로 35℃를 넘는 날이 닷새나 계속됐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1873년 관측 이래 최고인 40.9℃가 관측됐고, 윈난성에서는 44℃가 기록되기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올해 장기 폭염이 다섯 차례나 닥쳤다. 파키스탄 자코바바드에서는 5월에 이미 49℃가 기록되기도 했다. 남반구에서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브라질에서 1월에 역대급 폭염을 겪었다. 호주 서부 온슬로에서는 1월 13일 50.7℃가 기록됐다.
폭염은 강렬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피해를 낳지만 가뭄이라는 긴 후유증을 동반한다. 유럽을 비롯해 중국과 미국, 아프리카 등 역대급 가뭄이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다. 이들 지역을 보면 지구가 바싹 말라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의 ‘전 지구 가뭄 분석 보고서’ 는 “2022년 유럽의 여름 가뭄은 500년이래 최악”이라고 진단했다. 공동연구센터는 합성가뭄지수(CDI) 분석에서 유럽 국가 47%는 강수량이 평년보다 줄어 토양 수분 함량이 ‘경계’ 단계이고, 17%는 식물·곡물이 가뭄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는 ‘심각’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다뉴브강, 라인강 등 유럽 주요 강의 수위가 낮아져 식수와 생활용수가 부족한 지경이 됐다. 7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맞은 이탈리아 포강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폭탄 2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후위기의 공포가 전쟁의 공포에 겹쳐지는 장면이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의 최근 보고서 ‘농업자원감시’를 보면, 가뭄 때문에 옥수수, 대두, 해바라기의 올해 수확량이 지난 5년 평균 대비 각각 16%, 15%, 12%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폭염 속 세계 기아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으로 아프가니스탄, 케냐, 소말리아 등 10개국에서 4,750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6년 전인 2016년에는 2,130만 명이었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중국 기상청은 올 여름 1960년대 관측 이래 가장 긴 2개월 이상의 폭염을 겪으며 동시에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양쯔강의 경우 주요 구간의 수위가 지난 5년 평균보다 50% 이상 낮아졌다. 충칭시 구간에서는 6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물속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미국 서부에서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는 더 이상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연구팀은 올해 3월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가뭄이 1200년 사이 가장 극심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해 가뭄의 최대 19%는 인위적인 기후변화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통상적인 날씨 순환에서 뜨거운 날씨는 대기 중에 수분과 수증기를 생성하고, 이것이 물방울로 떨어져 비를 만든다. 하지만 온난화가 진행되면 대기에 더 많은 수증기가 생긴다. 그 결과 더 많은 물방울이 떨어져 폭우가 되고, 종종 짧은 시간에 더 좁은 영역에 쏟아진다.
기후변화가 왜 변화무쌍한지 미국 과학한림원의 물 전문가인 피터 글레이크는 ‘수량 불변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어느 곳의 폭우는 다른 곳의 기후변화 영향과 관련돼 있다. 시베리아나 미국 서부의 가뭄이 심해지면 그 물이 다른 곳에서 더 작은 영역에 떨어져 홍수를 악화시킨다.”
스페인과 호주 동부는 올해 홍수로 큰 타격을 입었다. 브리즈번에는 단 엿새 동안 연 강수량의 80%가 쏟아졌으며, 시드니에서는 3개월 남짓 만에 연평균 강수량 이상이 기록됐다.중국 남부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동안 북부에서는 폭우로 홍수를 겪었다. 중국 북부의 랴오강은 1961년 이래 수위가 두 번째로 높게 솟았다.
중국 연례기후변화 연구에서는 강수량이 2012년 이래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중국 정부는 여덟 차례의 가뭄 경보를 발령한 데 비해 1만 3,000번 이상의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2019년에는 같은 기간 28번 이상의 가뭄경보가 발표된 데 비해 호우경보는 1만 건이 내려졌다.
우리나라도 8월 초 폭우에 기습당했다. 8월 8일 서울 동작구에는 하루 동안 381.5㎜의 폭우가 쏟아졌다. 올해 중부지방 장마기간에 내린 강수량(378.3㎜)보다 많은 양의 비가 하루에 내린 셈이다. 1907년 서울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 만에 가장 많은 일강수량이다. 이날 동작구에서는 밤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141.5㎜가 쏟아졌다.
세계 곳곳이 폭염과 대가뭄, 홍수를 경험하고 있지만 올해 지구가 유난히 뜨거웠던 것은 아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8월과 여름철(6~8월)의 전 지구 육지와 해양 표면 온도는 1880년 관측 이래 143년 동안 각각 여섯번째, 다섯 번째로 높았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평균기온도 역대 6위에 그쳤다. 노아 산하 국립환경보건센터(NCEI)는 “올해가 가장 따뜻한 해 10위 안에 들 확률은 99% 이상이지만 상위 5위 안에 들 확률은 10.4% 이하”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 기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것은 산업화 이전 대비 1.1℃ 높아진 지구의 평균기온 때문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노아는 지난 5월 ‘연간온실가스지수’(AGGI) 연례보고서에서 “2021년 연간온실가스지수는 1.49로 1990년 1.0에 비해 50%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가 대기에 가둔 열량이 50%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세계의 날씨는 항상 매우 가변적이지만 인간 유래의 기후변화는 이들 변동성을 더욱 크게 만든다. 만약 올해 온난화 순위가 6위가 된다면, 역대 가장 따뜻한 해 10위는 모두 2010년 이후에 기록된다. 바야흐로 ‘기후위기’ 시대에 본격 돌입하는 셈이다. 해마다 유례없는 폭염, 가뭄, 홍수가 어느 곳을 강타할지 모른다. 이제 기후변화는 러시안룰렛 게임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