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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인가?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국정과제에서 미래전략산업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배터리를 꼽았다.
AI와 배터리는 4차산업혁명을 이끌 기술로 주목받지만, 반도체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반도체는 이미 1990년대 이후 30년간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 정부가 또다시 '반도체 초강국'을 산업정책의 화두로 내세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또 세계 각국이 반도체 기술전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트랜지스터부터 AI 반도체까지

반도체는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 대부분에 사용된다. 열, 빛, 자장, 전압, 전류 등 영향으로 성질을 바꾸며 매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것. 이 반도체의 시초가 된 기술은 ‘트랜지스터’이다.
트랜지스터는 전류나 전압의 흐름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담당하는 소자다. 세계2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역할, 즉 전자장비에 전자신호를 증폭하는 소자는 ‘진공관’이었다. 그런데 진공관은 전력소모가 크고 전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대체할 기술이 필요했다. 이에 1947년 미국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연구진이 빛을 쪼이거나 전자를 주입하면 전도가 달라지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이 발명은 전자공학 역사의 매우 중요한 분기점으로 오늘날 산업 발전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다.
1958년에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와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가 하나의 반도체(실리콘) 조각 위에 트랜지스터뿐만 아니라 저항, 다이오드, 커패시터 등의 여러 소자를 배치하고 연결하는 집적회로(IC)를 개발하게 된다. 집적회로는 얇고 가벼우며 수명도 길다. 또 소자뿐 아니라 연결선까지 회로 전체를 반도체 웨이퍼로 구현해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반도체 산업은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수를 꾸준히 늘려가며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다. 품목도 세분화되며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 AI 반도체 등으로 나눠졌다. 메모리 반도체는 말 그대로 일반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용도고시스템 반도체는 데이터 연산, 제어 등 정보 처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의 핵심 부품이기도 하다. AI 반도체는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론의 결과를 뽑아내는 AI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오직 AI 연산만을 위한 반도체라고 보면 된다.

AI 시대의 핵심 기술

AI가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핵심 기술로 부상하면서 미래 시스템은 AI가 생활 전반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학습과 판단, 명령 등 AI의 ‘지성능력’의 고도화는 필연적이다. 당연히 더 효율적이고 복잡한 컴퓨팅이 가능해져야 하는데, 이를 돕는 것이 바로 반도체인 것이다. 인간의 두뇌와 비교할 때, AI 시스템은 두뇌의 알고리즘이고, 반도체는 뇌세포에 해당한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초기 AI 시스템이 머신러닝 학습 목적으로 활용됐다면 장기적으로는 방대한 양의 학습데이터를 기반으로 추론의 작업을 거쳐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나갈 것이다. 추론이 가능한 수준, 그러니까 인간 두뇌 수준의 사고를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 뇌용량이 증가하는 것처럼 반도체 기술이 발달해야 한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2~3을 다투는 나노미터(nm) 초미세공정, 수율 관리, 한계를 넘는 3D소자 개발 기술 등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반도체 기술의 핵심이다.

세계 경제의 주도권 잡아라

반도체는 슈퍼컴퓨터와 전기차, 배터리 등 모든 첨단산업의 필수 부품이자 미래 기술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상품이다.
반도체 기술에서 누가 앞서느냐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서 주도권을 판가름할 것이다. AI를 필두로 모든 첨단장비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앞 다투며 반도체 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는 산업과 경제에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국방 분야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은 무기체계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 전쟁이 첨단기술의 전시장이 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미래 무기 패러다임은 지능형 초연결 네트워크, 다중정보기반 감시체계, AI기반 유·무인 무기체계 등 첨단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반도체 영역에서 변화·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최강자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의 안보가 세계 핵심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 개발, 제조로 나뉘는데 파운드리는 바로 제조에 해당한다. 반도체 칩은 나노 단위(10억분의 1m)에서 공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미세공정기술이 중요한 영역이고, 이를 운영·관리하는 비용도 크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이라 하더라도 파운드리까지 운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반도체가 제품화되려면 반드시 제조공정이 요구되므로 대규모 파운드리 기업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경쟁력 또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TSMC 외에도 SMIC(중국). UMC(대만)가 파운드리 대표기업이며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있다.

3Nanometer Wafer
더 작게, 더 많이, 더 적게

반도체는 나노 단위의 싸움이다. 머리카락 두께보다 훨씬 작은 세계에서 반도체가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반도체 칩을 더 작은 사이즈로 만들고 여기에 더 많은 정보를 집적하면서도 더 적은 전력을 소모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GAA(Gate-All-Around) 기반 3나노미터 웨이퍼는 반도체 기술을 선보였다. 3나노급 공정이 양산에 성공한 최초 사례이며, GAA 구조를 반영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반도체 공정은 입체구조의 ‘핀펫( FinFET ) 기술’을 적용해왔다. 물고기 지느러미( Fin ) 모양의 3D구조를 적용해 전류가 흐르는 채널과의 접점을 키우면서 반도체 성능을 향상한 것이다. 초미세공정으로 진화하면서 보다 전류를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졌고, 이후 등장한 것이 전류가 흐르는 채널을 4면으로 구성하고 있는 GAA 구조다. GAA는 전력효율을 높이는 장점뿐만 아니라 핀펫 공정과 호환성이 높아 기존 설비 · 기술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용가치가 높다.
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고성능이 요구될 것이다. 명령어를 수행하는 단계에서 연산과 추론의 과정을 거쳐 자동수행이 가능한 단계로의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3나노 반도체는 이러한 고성능을 수행하면서도 전력은 적게 소모하는 방식으로 차세대 반도체에 활용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1년 수출액이 전년 대비 25.8% 증가한 6,445억 4,000만 달러에 이른다. 무역통계가 작성된 1956년 이후 최대치다. 반도체 수출액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1년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29% 증가한 1,280억 달러를 기록했다. 제조 및 생산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총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은 국제분업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의 표본이다. 미국의 한 반도체 회사에 납품하는 협력 업체는 1만 6,000개에 이르는데 절반 이상이 해외기업이다. 제조만이 아니라 반도체 공정 전 단계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5월 정부 차원에서 ‘K반도체 전략’이 수립됐다. 반도체 생산, 원자재, 부품, 설비, 첨단 장비, 설계를 모두 통합한 고도의 효율적 산업 단지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최대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발돋움하는 동시에 안정적이고 주도적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