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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질병,
퇴행성 뇌 질환
정복을 위한
단초를 발견하다

생명과학과
임정훈 교수 연구실

세계적으로 퇴행성 뇌 질환 연구가 활발하다. 지금까지 발표된 파킨슨병 관련 학술 논문이 5만 편 이상, 헌팅턴병 관련 논문이 1만 편을 웃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논문의 결론은 대동소이하다. 현재로서는 극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UNIST 생명과학과 임정훈 교수 연구팀에서 루게릭병, 전측두엽 치매 같은 퇴행성 뇌 질환 관련 연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퇴행성 뇌 질환을 조기에 효과적으로 진단하고 근본적인 뇌 질환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평이다.
  • 글. 편집실   사진. 한유리
임정훈
생명과학과 교수
루게릭병 독성 단백질 생성 막는 ‘ZNF598’ 유전자 발견

퇴행성 뇌 질환은 말 그대로 뇌세포가 대규모로 사멸하는 질병이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루게릭병, 헌팅턴병 등이 대표적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이며, 국내는 2020년 기준 65세 이상 알츠하이머 환자 수가 63만 2,000여 명으로 유병률이 7.7%에 달하는 걸로 나타났다. 흔히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환자는 세계적으로 35만 명으로 추정하고, 국내는 해마다 900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발생한다.
전 세계가 퇴행성 뇌 질환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나, 노화에 따른 신경퇴화와 유전적, 환경적 요인들로 인해 단백질이 응집돼 신경세포가 사멸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명확한 발병 요인조차 밝히지 못했다. 발병 요인이 명확하지 못하니 치료법 개발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UNIST 생명과학과 임정훈 교수 연구팀이 발병 원인에 관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루게릭병, 전측두엽 치매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을 억제하는 ‘ZNF598’ 유전자를 발견하고, 신경세포 보호의 새로운 분자생물학적 원리를 규명한 것이다. 임 교수 연구팀은 ZNF598 유전자를 활성화해 루게릭병 환자 유래 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는 데 성공하고, ZNF598 유전자가 단백질 번역 품질 관리 경로를 통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단백질 번역’ 기전 관점에서 접근

세포 생리현상 유지에 꼭 필요한 단백질은 DNA의 염기서열 형태로 저장된 단백질(유전) 정보가 mRNA로 옮겨가는 전사 과정, 전사된 단백질 암호로부터 단백질 기본 구조인 폴리펩타이드가 만들어지는 번역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번역 과정을 거친 폴리펩타이드는 3차원 구조 접힘을 통해 생물학적 활성을 가진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임정훈 교수는 이 전체 과정에서 특히 mR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단백질 번역에 관심을 가졌고, 2013년 ‘신경유전학 및 리보노믹스 실험실(Neurogenetics and Ribonomics Laboratory)’을 열고 연구를 본격화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mRNA에 리보솜이 결합해 염기서열을 읽어 서열에 맞는 아미노산을 붙여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이 일차함수처럼 단순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 여러 연구는 그것이 단순하지도, 일정하지도 않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세포 내에서 일정한 속도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어떤 유전암호를 만나면 속도가 느려지거나 길을 바꿔서 번역합니다. 또, 정체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이처럼 단순하지 않은 단백질 번역 과정이 어떻게, 왜 일어나고 잘못될 경우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단백질 번역을 담당하는 리보솜이 비정상적인 번역 과정 도중에 멈추는 정체가 일어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단백질 품질 관리 경로가 활성화되고 번역 중간산물이 리보솜에서 분리돼 분해된다. 단백질 번역 품질 관리(RQC, Ribosome-associated Quality Control)는 비정상적인 번역 중간산물을 인지해 이를 분해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 같은 ‘비표준적인’ 단백질 번역은 다양한 종에서 나타나지만, 단백질 번역의 조절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며 왜 일어나는지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다. 임 교수는 이런 비표준적인 단백질 번역의 분자생물학적 작용기전을 규명하고, 기존에 고려하지 않던 다양한 단백질 번역의 조절을 통해 단백질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비표준적인 단백질 번역이 어떤 뇌질환과 관련되는지, 또 이를 어떻게 하면 제어할 수 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RQC로 퇴행성 뇌 질환 조기진단 가능성을 열다

루게릭병은 잘못된 유전 정보가 독성 단백질로 번역돼 세포 내에 쌓여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파괴되며 종국에는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임 교수 연구팀은 루게릭병 독성 단백질로 알려진 ‘poly(GR)’ 단백질의 세포 독성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찾는 과정에서 ZNF598 유전자가 신경세포 퇴화를 억제한다는 단서를 발견했다. 또, 루게릭병 환자의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운동신경세포에서는 ZNF598와 같이 단백질 번역 품질 관리에 관여하는 주요 유전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발현되며 결과적으로 단백질 번역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초파리 생체모델, 루게릭병 환자의 유도만능줄기세포로부터 분화한 운동신경 세포, 인간 신경아세포종 등을 활용한 다양한 유전자 편집과 제어 모델을 활용해 검증 과정을 거쳤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단백질 번역의 관점에서 퇴행성 뇌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RQC를 통해 이런 질환을 조기에 효과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루게릭병이 발병하기 훨씬 전부터 RQC 기능이 정량적으로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RQC 기능을 분석하고 제어한다면 퇴행성 뇌 질환을 예측하거나 조기에 진단해 증상을 늦출 수 있을 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임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앞으로 알츠하이머, 헌팅턴 등 주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확장해 이들 질환과 RQC 기능의 연관성 등을 더 깊이 있게 연구해나갈 계획이다.

MINI INTERVIEW
  • “수면주기,
    노화로 확장해 연구 이어갈 것”
    Q. 퇴행성 뇌 질환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연구실 초기에는 생체시계의 분자생물학적 기전을 연구했습니다. 퇴행성 뇌 질환 관련 유전자를 연구하긴 했으나, 질병이나 치료를 위한 연구는 아니었죠. 그런데 어느 날 논문을 보신 루게릭병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루게릭병을 고칠 수 있냐고 묻는 전화를 받게 됐어요.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죠. 지금은 단백질 번역 관점에서 루게릭병의 병세를 늦추거나 멈추는 치료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Q. 현재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구 주제가 무엇인가요? 퇴행성 뇌 질환은 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로 노령층에서 유병률이 높고요. 그렇다면 RQC 기능이 노화에도 관여하지 않을까. 현재는 조로증 환자 모델에서 단백질 번역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초파리 모델로 24시간 수면주기도 연구 중입니다. 수면주기는 유전자 발현이 24시간 내 조절된다는 것이 핵심인데요, RQC 기능이 생체시계와 관련된 단백질 번역 산물의 생성 속도를 조절해 수면주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또, RQC 기능이 신경세포의 사멸과는 반대로 신경세포의 발달에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연구도 시작했습니다.
    Q. 연구실을 운영하고 연구원을 이끄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학을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따라 스스로 질문을 도출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과학자로서, 연구자로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자기 동기 부여를 통해 연구에 매진할 수 있고 좋은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연구실 모토는 ‘Scientists that make a difference’입니다. 좋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과학적 발견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립된 과학자로 본인의 연구 그룹을 이끌어나갈 리더십, 다른 사람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봉사, 그리고 다음 세대의 과학도들에게 그러한 굿 스피릿(Good Spirit)을 물려주기 위한 다양한 역량과 자질이 필요한데 그것을 응축해 모토로 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