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메디컬 산업은 여러 산업들 중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이것은 사람이 활용하는 도구, 장치, 물건이 아닌 인간 자신을 혁신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궁극적인 산업도 인간 존재 자체를 개선하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이다. 저자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인간 기술혁명 중의 하나로 인식해, 이를 ‘존재 혁명’이라고 말한다. 불의 혁명, 정보 혁명, 농업 혁명, 철기 혁명을 초월하는 우리 존재 자체를 혁신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관을 혁신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극복하는 첫 단계는 정확한 진단이다. 과거의 질병 진단은 아날로그 정보에 주관적인 경험적 판단이 위주였다. 그러나 게놈 정보가 폭발적으로 생산되면서 의료혁명이 일어났다. 객관적이고, 정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진단과, 질병과 동반한 진단기술인 동반진단, 그리고 정밀한 치료와 예방기술이 가능하게 된 것의 밑바닥에는 게놈 정보가 있다. 게놈 정보의 특징은 첫째로 정확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변하지 않는 기준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타 오믹스(Omics) 데이터들과 더불어서 확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21년 의학 전문 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영국의 ‘지노믹스 잉글랜드(Genomics England)’사에서 진행한 10만 명의 게놈 분석 결과가 실렸다.(100,000 Genomes Pilot on Rare-Disease Diagnosis in Health Care — Preliminary Report) 이 연구는 게놈 빅데이터가 미래 진단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다. 기존 희귀 질환 진단율이 20% 정도인데 비해 게놈 정보를 활용할 경우 그 2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10만 명 중에서 희귀 질환 관련 2,183가족에서 4,660명의 게놈을 분석해 이 중의 25%의 환자에게는 즉시 혜택을 줄 수 있는 의료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UNIST의 게놈산업기술센터는 현재 궁극적으로 ‘극노화’를 목표로 극질병에 필요한 표준게놈정보 확보로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 앞으로 진단을 넘어 치료제에 더 집중해, 노화를 치료하거나 그 과정에서 게놈 기술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COVID-19의 80세 이상의 사망률은 30%에 가깝다. 이것을 단적으로 해석하면 감염병도 ‘노화병’이라는 의미다. 암도 늙으면 걸리고, 심장병도 늙어서 걸린다. 당뇨도 노화병이고, 치매도 노화병이다. 노화는 당연한 숙명적 자연현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만병의 ‘근원병’이다. 80세의 사람에게 20세의 면역과 건강이 있었면 치사율이 0.01% 미만으로 내려갔을 것이고, 예방도 가능했을 것이다. 저자는 노화를 치료하는 것을 통틀어 ‘극노화’라고 정의한다. 이는 극노화는 항노화와 역노화(노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합친 개념이다.
질병 진단이 정밀해지면 치료가 더 정확해진다. 따라서 극질병이 빨라진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최근의 예가 COVID-19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나타나자마자 1주일 내에 중국의 게놈센터에서 30,000개의 게놈 염기를 빨리 읽어내 전 세계적으로 공유했다. 그 게놈 정보에 맞춰서 바이러스 백신과 진단 키트, 치료제들이 디자인됐다. 게놈 해독 기술이 없었던 40년 전이라면 이것이 어떤 바이러스인지, 감기인지 아닌지도 몰랐을 것이고, 정밀 타격식 백신 설계도 할 수 없어 부작용도 컸을 것이다. 게놈 기술은 암, 심장, 치매 등과 같은 병뿐만 아니라 감염병에서도 핵심기술이다. 우리가 맞는 mRNA백신도 간단하게 말하면 일종의 ‘게놈 백신’이다. 게놈 서열에서 정밀하게 S단백질의 서열을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잘 우리 몸에 항원으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울산에 국가게놈기술원이 10년 전에 있었고, 많은 동식물, 인간, 미생물들의 게놈들이 분석이 되어 왔고, 그 관련 회사들이 많이 주변에 생겼고, 첨단 인프라 기술들이 유기적으로 발전을 해왔고, 게놈 해독기도 국산화 되어 한국에서 정밀 신속한 게놈 해독기를 싸게 돌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한국 기술자들이 모더나와 같은 회사를 만들어서 COVID-19 백신을 넘어 암 백신을 만들고, 앞으로 수년 내에 암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UNIST 게놈센터의 1호 벤쳐인 클리노믹스는 암 정복과 극노화를 목표로 만든 진단회사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 회사는 상장한 지 1년이 안 되어,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으로 흑자를 내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게놈 기술이 플랫폼 기술이기에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어떤 형태로든 급속히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게놈 기반 회사들이 부울경에 1,000개가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현재 부울경의 산업은 중공업 위주이지만 이것을 더 부드럽고, 인간적인 산업인 바이오메디컬 산업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면 더욱 큰 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게놈 정보와 같은 혁명적인 데이터를 생산하고, 응용하기 위해서 울산시와 UNIST는 2015년부터 1만 명의 한국인 게놈을 분석하는 ‘울산 만명 게놈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의 사회적 목표에는 ‘부울경’이라 불리는 한반도의 동남권을 동아시아의 문화, 경제, 과학기술의 허브로 만드는 하나의 주춧돌을 세우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부터 이미 동남권에서 세계적인 게놈 기반 바이오 의료 산업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 뒤를 바라본 장기적 비전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버금가는 국제적 과학 혁신 벨트를 만드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사적 연구 사업 최초의 결과는 2020년 한국인 1,000명 게놈을 분석한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라는 학술지에 출판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정상인의 게놈을 수천 명 모으면 암을 더 정밀하게 분석을 할 수 있고, 노화를 비롯한 각종 질병을 연구하는데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 변이들의 합인 ‘변이체’ 정보가 유용함이 증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중국인, 일본인과도 다른 독립적인 게놈군을 형성하고 있고, 약 4천만 개나 되는 한국인 특이적인 변이가 있다는 것도 발견됐다. 앞으로 10만 명, 100만 명의 게놈을 분석하게 되면, 이런 한국이 고유의 변이들이 어떤 것인지 더 많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부울경이 앞으로 1조 원 이상 투자될 국가바이오빅데이터 사업을 통해 최소 수십만 명의 게놈을 분석하면 훨씬 더 정밀한 한국인 게놈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를 몇 개 꼽으라면, 저자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하버드대가 있는 보스턴, 스탠퍼드대가 있는 실리콘밸리의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UCSD가 있는 게놈의 허브, 샌디에이고를 택한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뛰어난 인재들이 과학적인 혁신으로 세상을 바꾸는 도시라는 것이다.
울산, 부산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동남권의 뛰어난 에너지자원, 인적자원, 환경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울산 주위에는 가덕도 신공항을 가지는 부산, 대구, 경주 등 동·남해안과 내륙을 잇는 큰 도시들이 밀집해 있다. 또 미래에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해상과 항공, 해저 터널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가진 곳이 바로 부울경이다.
이들 지역은 세계적으로 드문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최적의 기후, 아름다운 산하, 바다 및 문화가 어우러진 살기 좋은 이 지역은 친환경, 친인간적인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적소다. 여기에 미래 최고의 과학기술중심 허브를 만들면 실리콘밸리나 모더나 같은 첨단 바이오 기업들이 있는 보스턴 바이오단지에 버금가는 산업단지가 가능하다.
UNIST의 모토는 ‘First in Change’다. 이는 스스로 가장 먼저 변하고, 세상을 가장 먼저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UNIST는 한국의 타 대학과 경쟁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고 부울경을 뛰어난 문화, 과학, 경제, 산업의 수도로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게놈은 인간 혹은 생명체의 핵심 정보를 디지털로 생산, 수집, 처리, 편집, 응용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기에 UNIST 게놈센터에서 수행하는 만 명 한국인 게놈사업은 앞으로 30년 뒤에 부울경이 세상에서 가장 의료기술과 복지가 잘된 지역이 되는 비전 달성의 축이 될 수 있다.
부동산 문제에도 나타나듯이 한국은 현재 수도권 편중화로 지방의 대학들이 축소되고, 지역의 인재들은 당연히 수도권으로 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것은 국가 발전과 개인의 행복추구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한국에 서울과 같은 수준 높고 효율적인 도시가 3곳이 더 있다고 생각해보자. 환경도 잘 보전되고, 건강한 환경으로 정교하게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다면 지금의 한국에 3개의 독자적인 한국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자원과 인력이 서울로 빨려 들어가서 과학 연구뿐 아니라 기업 운영이나 첨단 새로운 기술을 다양하게 지방에서 하는 게 매우 어렵다. 이대로 계속 가면 편중화가 더 심해져서 부산, 울산, 대구 등은 일부 특화된 산업을 빼곤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지방에 보내고, 지역에 세금을 나눠주는 형태로는 절대 지역불균형을 해소할 수가 없다. 지방은 중앙에 요청하여 경제와 문화를 독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지방 경쟁력을 올리는 더 독립된 자치가 필요하고, 그 핵심은 과학기술이어야 한다. UNIST의 설립은 그런 맥락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이런 과학기술중심 대학이 한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대학 진학률이 높은 나라이고, 진학률은 앞으로도 계속 더 올라 수십 년 뒤엔 대학도 지금의 고등학교 가듯 하는 지식 기반의 완전히 다른 세상이 온다. 정보통신의 발전은 대학들로 하여금 물리적으로 효율적인 지역 중심의 거점화를 촉진할 것이다. 첨단 대학은 혁신을 시작하고, 기업들이 혁신의 끝을 맺는 구조가 형성된다.
혁신의 언어인 과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의 역할을 더 확장해야 한다. 세상이 메타버스와 같은 방식으로 가상화될수록, 지식인의 메카인 대학들이 더 발전해야 한다. 한국은 특히 전국 전역에 이런 대학 기반 최첨단 혁신 허브를 만들고, 나라 전체가 전 지구의 첨단 산업을 다 이끄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방과 정부는 이런 대학에 더 많은 투자를 아낌없이 하고, 과학인에 대한 대우를 파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